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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Apr 13. 2023

나를 담는 공간

3月,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을 읽고

  한 사람의 인생이란, 내가 기억하진 못해도 분명 존재했던 작은 순간들의 총합이라고 했다. 시간이 발산한다는 것은 그런 사소하게 작은 순간들마저,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어쨌거나 늘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곧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에게서 명확한 인과관계를 따지고 들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커피와 와인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타고난 예민함 때문에 계속 재발한 것도 아니며, 곧 죽어버릴 암 환자를 위한 구체적이고 희망찬 미래와 그 미래를 위한 집까지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화자는 이런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시간의 바깥 영역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 출생과 죽음, 성장과 노화, 발생과 소멸을 시간이란 개념 바깥에서 이해하고 싶다. 얼음이 물이 되고 물이 수증기가 되듯 바뀌어 달라지는 것. 시간을 배제하고 변화를 말할 수 있을까. 죽음 다음이 있다면, 어쩌면, 시간에서 해방된 무엇 아닐까.  <홈 스위트 홈 中 P.15>


  시간이 발산한다. 그것은 순서에 맞춰 길게 늘어진 타임라인이 아니라 각각의 사건이 독립적으로 기억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점이 어디가 되어도, 몇 번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암 환자가 집을 지을 수 있다. 과거가 존재하듯 미래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기억들이다. 그렇다면 그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그곳은 바로 ‘집’이다. 

  ‘집’은 나를 담는 공간이다. 돌, 철, 나무 그리고 시멘트로 만든 공간일 뿐인데, 내가 들어가 살고 의미를 부여하면 그곳은 집이 된다. 그저 존재하던 어떤 공간일 뿐인데, 나의 기억을 채우면 그곳은 나를 위한 집이 된다. 그러니 집을 내 집으로 만드는 것은 부동산 계약서나 월세 따위가 아니라 ‘기억’이다. 발산하는 시간을 붙잡아 돌봐주면 그게 바로 집이 된다.

  집이라는 공간의 특성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집이 없어> 라는 네이버 웹툰이 떠올랐다. 이 만화의 주인공인 해준과 은영은 고등학생이다. 둘은 각각 엄마의 죽음과 가정폭력이라는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해 집을 박차고 나온다. 그렇게 거리를 전전하다 버려진 기숙사에 들어가 살게 된다. 도저히 ‘집’ 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흉흉했던 그곳에서 둘은 각자의 상처를 돌아본다. 그동안 살아왔던 수많은 시간과는 분리된 또다른 기억을 채워가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쯤, 둘은 그곳을 진정한 집이라고 느끼게 된다. <집이 없어>라는 제목은 실제로 집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을 둘 곳, 나를 담을 곳이 없으면 집이 없는 것이다. 나를 온전히 담아내는 공간이 생기면 그게 곧 나의 집이다.   


  -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기계의 알림 또는 경고음 같았다. 나는 그 멜로디의 가사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배운 기억도 없이 저절로 외우고 있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집은 아직 없었다.  <홈 스위트 홈 中 P.26>


  몇 번의 공사를 거쳐 화자를 담아낼 집이 완성되었다. 시간이 발산한다고 믿는 화자는 기억 속 어딘가 방치된 작은 순간들마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기에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곳은 스위트홈일 것이다. 돌아갈 집이 없던 화자에게 집이 생겼다. 그건 화자에게도 나에게도 위로였다. 



  나는 천안시에서만 20년 가까이 살았다. 화자가 툇마루의 청개구리를 기억하듯, 나도 천안의 종합운동장을 기억한다. 삼거리공원의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한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스쳤던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2023년, 진로가 바뀌면서 나는 그동안 걸어온 길을 등지고 낯선 길을 걷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이다. 그래서 집도 바뀌었다. 강아지가 있는 따뜻한 주택이 아닌 왕십리의 작은 하숙방이 나의 집이 되었다. 벽지도, 책상도, 침대도, 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마저 어색하게 느껴졌다. 도저히 나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천안 친구들과 찍은 사진, 우리 강아지 사진, 종합운동장에서 찍은 사진, 삼거리공원에서 찍은 사진. 그런 것들을 다닥다닥 붙였다. 

  한 사람의 인생이란, 내가 기억하진 못해도 분명 존재했던 작은 순간들의 총합이라고 했다. 나는 발산하는 시간들을 낚아채 이곳에 묶어두고 싶다. 집에 내 몸을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공간에 나의 시간을 채워 넣으면 그곳이 집이 된다. 지나간 과거, 지나가고 있는 현재, 지나가게 될 미래. 어느 것이든. 이제는 왕십리 하숙방이 나의 집이다. 성동구립도서관이 나의 집이다. 소월 아트홀 어린이꿈공원 앞 계단이 나의 집이다.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대한으로 많이 기억할 것이다. 그러면 여기가 바로 나의 ‘홈 스위트 홈’이 된다.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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