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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Apr 13. 2023

반복되는 시작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품고 : 다시 짓기

3月,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을 읽고

‘분명 일어났으나 아무도 모르는 일들.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무수한 순간들. 그런 것들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가도 한 사람의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들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없을 수만은 없고.’
‘나의 선택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를 선택하여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탄생과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 누구나 겪는다는 결과만으로 그 과정까지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 한송이.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겠지만.’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


  홈 스위트 홈 속 ‘나’는 암에 걸린다. 암을 치료하며 견뎌내는 시간이 반복되자 이제 화자는 스스로 집을 다시 짓고 그 안의 사물을 바라보고 과거를 떠올리는 등의 행위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그 집으로부터 또 다른 나의 삶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암이 재발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 속에서 ‘나’에게 구체적인 사물(개구리, 꼬마 돈가스, 야광 별 스티커 등) 은 기억을 불러오고 그 작고 사소한 기억들은 나가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거창한 말,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 담긴 말이 아닌 보다 구체적이고 개인화된 누군가의 기억이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어 그 과정에서 나는 엄마와 애인인 어진과 함께한다. 그 둘과의 관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미래까지도. 나의 새로운 시작들을 항상 동행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위로가 된다. 주인공은 ‘나는 이 집에서 죽어.’라는 말을 어진에게 하는 순간 미래와 희망을 느낀다. 참 아이러니하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고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으로부터 미래와 희망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긴 어렵다. 그래서 쉽게 생각해 보았다. 내가 무너질 것 같던 순간에 나를 붙잡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죽음. 그러니까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은 나를 오히려 차갑게 만들었다. 명확히 이 상황이 문제라 결론지으니 힘들고 괴로운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내가 이 문제를 단순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다음 과정을 그리게 되고 그것들이 모여 새로운 희망을 만들었다. 그다음 집 짓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만의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 이 선택들은 내가 또 다른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미래를 기약하기보다 과거를 곱씹는 행위를 통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을 설정한다. 그리고 그것에 몰두하는 것이 내 새로운 발걸음을 이끌어주었다. 또한 지금까지 함께해 준 각각의 경험이 담긴, 나를 위한 마음이 담긴 구체적인 위로들은 나에게 남아 수도 없이 넘어지는 순간에도 문득 떠올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이어질 때 비로소 나는 죽음과 절망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글을 5번 읽은 지금도 최진영 작가가 건네고 싶었던 말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진 못하겠다. 다만 인간에게 찾아오는 극복하기 어려운 아픔을 최진영 작가의 방식대로 잔잔하고 섬세하게 풀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을 곱씹고 비평을 읽어보고 생각할수록 표현에 신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작가가 이 글을 쓰며 그랬듯 ‘홈 스위트 홈’을 통해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을 해보라고 잔잔히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천국은 여기 있고 그 또한 두고 갈 것이지만, 그 직전까지 나는 또 다가올 새로운 시작들을 위해 구체적 기억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그게 선택될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르지만. 아무튼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이다. 오늘의 사랑, 오늘의 당신,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사소한 힘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삶을 버텨 나갈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원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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