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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n 08. 2023

충격의 방식

5月,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을 읽고

“상상해보렴. 262년이야.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거야.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야.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고. 너의 맨손으로 262년을 만질 수 있어. 할머니가 네게 가르친 것을 너는 손녀에게 가르칠 거야. 2186년의 미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저자가 인용한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시간과 물에 대하여』 중 한 문장이다.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 모여 전체의 실천이 된다.”가 환경 캠페인의 주요 문장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다. 이 문장이 함의하는 바는 조금씩 변했다. “캠페인에 실천하는 개개인이라는 작은 실천이 동시에 이뤄지면, 큰 영향을 끼친다”식의 내포된 의미는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이 작은 실천을 했을 때, 그 행동을 본 다른 개인에게 영향을 주고, 이는 다른 개인의 실천으로 연결된다.”의 의미로 변했다. 이 책에서는 “개인 자체가 영향력을 가지는 시간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아닌, 그 사람이 살아오며 만나는 사람들의 수명의 총합이다.”로 그 의미를 설정하고 차곡차곡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 마그나손의 글처럼 개인은 단순히 자신의 생만을 지탱하는 것이 아닌 어렸을 때의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의 시간 그리고 자신에게 영향을 받고 새롭게 긴 생의 여정을 시작할 사람의 시간 모두를 지탱하며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연속성, 아니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있는 사람과 사람들의 시간의 연결성 그리고 끊어지지 않는 고리는 아득하고, 끝도 없는 거대한 것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책임을 진 개인들로 받아들인다. 그러기에 그 이후 나오는 것들 : 열악한 환경에서 비윤리적으로 죽어가는 동물들, 우리가 동물을 식사할 때 부르는 명칭에 내포된 잔혹성 등은 이미 한 번씩 접해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커다랗고 께름칙하게 다가온다. 여기서 ‘께름칙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실천했음에도 일회성으로 끝났거나, 꾸준히 고발하고 있지 못하는 나를 비춰보면서 동시에 앞서 기억에 남은 ‘개인의 책임’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책에서 나온 여러 비윤리적인 상황이나, 약자의 고통이나, 기후의 위기가 아니다. 총합의 위기 상황 앞에서 어떤 태도로 이를 바라봐야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의 지속성이다. “작은 실천이 모여 전체의 실천이 된다”의 문장은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 이유는 처음에는 마음에 깊이 남아 실천으로 이끄는 문장일지 몰라도, 그를 인용한 다양한 콘텐츠들, 캠페인들로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결국 비실천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작은 실천이 모여 전체의 실천이 된다”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 것은 실천의 지속성에 있어 중요하다. 작년에 침수피해로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던 장마는 올해 더 커다란 피해의 형태로 찾아올 것이다. 땅을 메마르게 만드는 가뭄, 농사를 망치는 메뚜기 떼, 호흡을 힘들게 만드는 황사와 미세먼지, 쓰나미, 섬들이 물 밑으로 가라앉고 추억의 동물들이 멸종되는 일들은 더욱 빈번하고 심화될 것이다. 문제는 적응에 있다. 크게 참사나 재난이 벌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어느 순간 이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개선이 아닌 이번 위기를 어찌어찌 넘기기 위한 미봉책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꾸준히 이를 고발하고 행동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겠으나, 일각에서는 유머코드나 어쩔 수 없는 시기 같은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충격이 필요할까? 그러나 그 충격이 참사나 재난일 필요는 없다. 기존의 당연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문장을 재정의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사건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꾸준히 위기를 바라보며 쓰인 문장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꾸준히 위기를 바라보고 심심한 문장을 재조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by. 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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