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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n 08. 2023

우리가 꽤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5月,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을 읽고

  아름다운 말이라 함은 사랑, 추억 등등 명쾌한 정의는 없으나 만국이 공통으로 뭉클하게 느낄법한 추상적인 단어가 연상된다. 작가는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움의 범주에 속하리라 생각지도 못할 ‘비건, 동물복지, 물살이, 성평등’과 같은 단어들을 그 선상에 두었다.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는 책의 내용이 내겐 도리어 불편했다. 비건과 글루텐프리를 구분하지도 못하는 얕은 지식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굉장히 개혁적인 문장들이었다. 불편하고도 무지한 시각으로 무모한 문장의 뭉텅이를 읽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물살이, 동물 한 명’과 같이 이전이라면 기괴하다고 여기며, 편집장처럼 빨간 선을 죽 그었을 표현들이 점차 익숙해졌다. 종교적 신념이라며 눈감아온 차별금지법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감히 시도해보리라 생각지도 못한 비건이 친숙해졌다. 빠른 손가락 넘김에 시선조차 두지 않았던 뉴스 헤드라인의 농성 중인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편한 감정에 애써 넘긴 구조적인 사회의 틈에서 터져나오는 슬픔을 이제야 받아들였다. 


  작가는 수많은 주체들을 인터뷰한다. 동물이기도 하고, 비인간 동물을 사랑하는 인간 동물이기도 하며 산업잠수부, 청소부, 장애인 등 보통의 매스컴에서는 열악하다 비치는, 심지어는 비추지도 않는 부분을 드러낸다. 모두가 스쳐 지나가는 자리에 남아 슬픔을 겪어내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생기는 단어들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사회가 비추는 영광은 당연히 없겠고 자칫하면 생계도 위협될 순간에도 부르짖는 외침과, 그를 외면하는 거대한 사회와 계속되는 외침 사이 균열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지극히 인간, 나의 입장에서 다른 생명의 희생을 합리적으로 넘긴 추출주의를 반성한다. 한시라도 벗어나 본 적 없는 관점, 신체로부터 벗어나 다른 인격을 가져보려는 시도를 한다. 책을 읽은 나는 오늘 하루 어떤 아름다움에 주목했는가?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살피었을까? 


  꽤나 거친 고백을 하자면. 

  운이 좋아 인간 동물로 태어났고, 비인간 동물들의 사육시설은 가보지도 않았으며, 평생을 펜만 쥐다 언젠간 사회 피라미드의 상부에 서겠다 꿈꿔왔다. 이런 평온한 삶 가운데 혹시나 내가 저들의 슬픔을 너무도 깊이 공감하여 저 자리에 멈추면 어쩌지, 명예보다는 연대를 택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과도하게 앞서서 그들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최근 심리검사를 했을 때도 타인과 연대하는 삶을 자각하냐는 질문엔 하나같이 ‘매우 아니다’를 골랐다. 겉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꿈이라 포장했지만 사실 나는 인간이 아닌 이들, 사회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자들의 삶을 알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던 듯하다. 

  슬픔을 아는 자만이 그 자리에 멈추고, 본인이 겪은 슬픔이 타인에게 반복되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슬픔을 모르고, 연대를 모르는 삶을 지속한다면 난 이 책이 말하는 아름다움을 영영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무심코 잊은 한권의 책으로 두지 말고 억지로라도 떠올리자. 이미 상할 대로 상한 이 세상에 그래도 꽤나 괜찮은 인간이 되기 위한 발버둥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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