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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n 08. 2023

지구의 내장 속에서

5月, 『숨 쉬는 소설』을 읽고

  「숨 쉬는 소설」은 생태, 환경, 생명의 문제를 다룬 여덟 편의 단편 소설들을 엮은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각기 다른 곳에서 모였다는 점이다. 이 책을 위해 쓰여진 소설들이 아니고, 다시 엮여 탄생되었다. 해당 책을 만든 엮은이들은 소설을 통해 우리 시대의 화두와 만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았고, 지구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넓히고 고민할 부분을 짚을 수 있는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단편들은 각기 다른 상상력을 바탕으로 지구의 문제를 전한다. 화학물질, 지구온난화, 플라스틱 문제, 반려동물, 신체의 가치, 육식 문화, 산업 쓰레기, 자연의 가치 등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김중혁의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였다. 이 이야기에는 베스트 셀러 작가 ‘수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창작을 돕는 인공지능 ‘해밍웨이’가 등장한다. 수진은 헤밍웨이에게 플라스틱 섬에서 조난당했다 살아 돌아온 조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수진과 헤밍웨이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소설적으로 감동적인 순간이 없다는 이유로 완성되지 못하였다. 이 단편의 화자인 해밍웨이가 수진 대신 조이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때도 있기 때문에. 


  추락한 경비행기에서 탈출한 조이는 바다에 몸을 맡긴 채 플라스틱 섬에 도착한다. 생명력이 없는 나무와 해류에 밀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한 기괴한 섬. 수십만 플라스틱 포장재들이 썩지 않고 쌓여가고 있는 곳. 그곳에서 조이는 쓰레기 속에서 음식물을 찾아 헤매고 탁한 바닷속으로 잠수해 먹을 것을 찾아가며 소득 없는 시간을 보낸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해변을 바라보던 조이는 테스코의 비닐봉지에 적힌 ‘낭비할 시간이 없다’라는 문장을 발견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 광고 문구로 쓰였을지도 모르는 문장은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되어 플라스틱 섬에 영원히 머문다. 해당 문구를 본 조이는 힘을 내고 일어선다. 삼에 쌓인 쓰레기를 샅샅이 뒤지며 먹을 것을 찾아간다. 하인즈 콩 통조림을 발견하고,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포만감이 노곤함으로 바뀐 조이는 넓어진 시야를 품은 채 살아남을 확률을 따져보고, 자신의 몸은 플라스틱과 달리 썩게 될 것이라며 다행스럽게 여긴다. 


식사 시간에 맞춰 신선한 도시락을 주문하세요.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조이가 집어든 플라스틱 덩어리에는 ‘식사 시간에 맞춰 신선한 도시락을 주문하세요. 어디든지 달려갑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자연스레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당연하게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별다른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렸던 날들. 그렇게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 도시락은 더 이상 신선하진 않아도 평생 이 곳에 존재할 것이다. 조이는 딱딱한 플라스틱들을 찾아내 이리저리 엮고 침대 비슷한 자리를 만들었다. 플라스틱 침대 위에서 별빛을 올려다 본다. 살아있는 생물이 없는 조용한 곳. 플라스틱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이는 외로움을 달랜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곳


  플라스틱 라이터를 발견한 조이는 물고기를 구워 먹을 생각에 낚시를 시작한다. 죽은 채 방치 된 물고기들을 건져 올려도, 그 물고기 배 안에는 플라스틱이 가득했다. 맛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도 못한 채 물고기를 구워먹었다. 플라스틱이 가득 차있는 물고기들을. 조이 주변에 가득한 플라스틱 땔감을 활용해 물고기와 새를 조리해 먹었고, 구조대는 그 플라스틱들이 내뿜은 검은 연기를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조이는 침실 역할을 해주던 플라스틱을 바라보았다. 미키 마우스와 미니마우스가 그려진 디즈니랜드 플라스틱 박스에는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곳에서 산 무언가도 결국은 쓰레기가 된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플라스틱 섬에서 단 하나뿐인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바다에 무언가 던진 적이 있다. 지구의 내장 속에 플라스틱이 있다.


  헤밍웨이가 조이를 위한 소설의 소재를 찾던 중, 조이가 돌연 사망했다는 기사가 떴다. 자신의 침대에서 누운 채 발견되었다. 죽음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플라스틱 섬에서 돌아온 조이는 ‘바다에 무언가 던진 적이 있다. 지구의 내장 속에 플라스틱이 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헤밍웨이는 두 문장이 이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 둘 문장 사이의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이가 바라본 지구의 내장 속 플라스틱은 언젠가 조이가 바다에 던졌을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조이의 몸과 다르게 플라스틱은 썩지 않으니. 지구의 내장 속에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최근 파타고니아의 광고 속 문구 “Not Mars”가 떠올랐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파타고니아는 ‘뒤를 돌아보기보단 앞을 향하며, 그 어떤 다른 행성이 아닌 지구의 생명을 바라본다’고 이야기한다. 오직 하나뿐인 우리의 터전,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해달라고 호소한다. 화성은 됐다고. 우리의 기회는 지구에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성 이주의 꿈이 담긴 로켓은 첫 시범비행에 들어갔고, 플라스틱 쓰레기는 여전히 쌓여간다. 우리가 물건을 사는 과정은 너무나도 쉽다. 언제 어디서든 클릭 한 번이면 내가 원하는 물건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똑똑한 알고리즘은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필요도 없는 물건을 구매하게 만든다. 편리함이 커질수록 죄책감은 잊혀져 간다. 나의 소비가 지구를 아프게 만든다는 사실은 잊은 채 살아간다. ‘태평양 플라스틱 섬에서 생존한 사람과 그의 이야기를 모아 소설로 쓰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언젠간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섬뜩하게 다가왔다. 우리도 조이가 될 수 있다. 지구의 내장 속에서 내가 버린 플라스틱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by.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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