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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Sep 13. 2023

내가 될 나

8月,  김화진의 「근육의 모양」을 읽고

  무언가를 배울 때, 새로운 것이 어렵기보단 서툴고 모자란 나를 견디는 것이 더 힘들었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나 역시 첫 발자국을 내딛기까지가 오래 걸리는 편이고, 실패가 두려워 결국 시도를 하지 않은 적도 많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향해 올곧게 달려나가는 사람도 아니었다. 


  「근육의 모양」 속 주인공 재인은 이런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할까 말까 할 땐 ‘한다’를 선택하는 주인공 재인은 ‘해본 것’ 리스트를 적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무조건 남는 것이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점점 채워져가는 ‘해본 것’ 리스트를 보며 자신을 이루는 것들을 되새기기도 했다. 


“어디 있는지 모를 근육을 머릿속으로 더듬었다. 잘하고 싶었다. 잘 해내고 싶었다. 처음 하는 것을 마주할 때면 매번 드는 생각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써본 적 없는 근육을 상상하기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서른 두 살의 겨울, 재인은 필라테스를 시작한다. 처음 해보는 필라테스를 잘 해내고 싶었지만 써본 적 없는 근육을 상상하긴 어려워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곤 했다. 열 번의 수업 중 아홉 번을 채운 재인은, 필라테스를 재 등록한다. 그 이유는 근육의 모양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찾아낸, 여러 번 써서 알아낸 근육을. 그리고 ‘해본 것’ 리스트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단어들을 읊게 된다. 독립과 절교, 파혼과 같은 ‘끊어진 관계의 기록’들은 흉터가 아니라 근육임을 깨닫게 된다. 누가 자신을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사용해서 남은 흔적임을 되새긴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재인은 속으로 ‘해본 것’ 리스트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단어들을 읊었다. 독립, 절교, 파혼, 끊어진 관계들의 기록을. 그리고 생각했다. 그 리스트는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누가 날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내가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야. 어딘가에 아직 찾지 못한 근육이 있을 것이었다. 재인은 이제 겨드랑이 뒤쪽에 있는 근육의 이름을 알았다.” 


  휴학을 신청한 2023년 1월, 만나게 된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라는 말은 큰 위로를 주었다. 도전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던 일들을 시도하고, 오랫동안 미뤄둔 일들을 지워가며 나만의 흔적을 만들고 싶었다. 좌절과 실패를 통해 나만의 근육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품었다. 그리고 8월, 「근육의 모양」을 다시 읽으며 지난 한 학기를 돌아보았다. 


  2023년 1학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쌓아 나갔다. 같은 꿈을 꾸는 이들과 긴 대화를 나누고, 하나의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기도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표현에 감탄해보기도 했다. 평생을 먹지 않은 커피에 도전했고, 야구 관람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다. 나를 소재로 한 발표를 자주 했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써 보기도 했다. 조급함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여전히. 고민 끝에 결국 교환학생 지원을 포기했고, 고대하던 일들을 취소하기도 했다. 나보다 잘난 이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몰래 상상하며 부족한 나를 견뎌 보기도 했다. 걱정하던 일들은 별게 아니었지만, 예상 밖의 시련은 언제나 찾아왔다. 돌아보면 별 거 아닌 일에 겁을 먹기도 했고 이겨내지 못한 채 멈춰서 있기도 했다. 뾰족한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남의 말을 한 귀로 흘리는 못된 버릇도 여전하니. 


  이 책이 왜 이리도 좋을까 생각해보았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던 감정들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책 덕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툴고 모자란 나를 살피며 뒤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책을 다시 곱씹어보며 나의 모난 부분과 둥그런 부분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될 수 있는 나만의 근육을 찾을 수 있었다. 



by.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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