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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Sep 13. 2023

내가 나를 들여다보면

8月,  김화진의 「꿈과 요리」를 읽고

  스무 살을 기점으로 나는 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과 더 가까워졌다. 내가 모르는 수학 공식을 외우거나 공학용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편했다.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친구의 면접을 진심으로 응원했고, 디자인 회사 입사 예정인 언니의 졸업 전시를 온 마음 다해 축하했다.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은 그 종류와 쓰임에 상관없이 견제됐다. 글을 쓰는 사람의 글은 읽지 않았다. 나와 같은 쪽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나의 과거를 터놓기 싫었고, 현재를 공유하기 민망했으며, 미래를 도모하는 것은 꺼려졌다.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랬다. 꿈이 멀어지고 현실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그랬다. 

  처음 읽어본 김화진 작가의 소설은 따뜻한 심연 같았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는 오래된 구절처럼, 내가 솔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동안 소설이 나의 마음을 깊이 핥고 가는 것 같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그것이 수치가 아닌 기분 좋은 화끈거림으로 남은 이유는 나도 이제는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떤 나는 지나치게 솔지와 같고, 또 어떤 나는 때때로 수언과도 같다는 것을.


  실패 속에 있을 때만 우리는 사랑을 한다. 실패하는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작가 김화진이 쓴 것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지치지 않는 열정일 것이다. 그 열정은 우리를 애타는 마음의 온도보다 더 뜨겁고 깊은 곳에 데려다 놓는다. 실패로서의 사랑과 그런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 밑도 끝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이 무모한 사랑의 주체는 언제나 타인의 마음을 읽는 중이다. 때로 천국이고 주로 지옥인 그곳을 무엇 하나 건너뛰는 법 없이 모두 읽어내는 이 완전한 짝사랑의 고백을 읽는 내 마음도 어느새 사랑이다.  - 박혜진, 해설 : 마음이론 中


  불안정한 시기에 겪는 모든 감정은 지나치게 공격적이다. 열등감과 자격지심, 외로움과 불안함이 그렇다. 숨기려 해도 어떻게든 드러나고 마는 그 감정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에서 비롯된다. 내가 꿈을 너무 사랑해서,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사랑이 공격성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에도 빈 공간이 생겼다. 그곳에 비로소 나와 같은 쪽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모든 게 새로웠던 반년을 보내며,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교훈적인 소설은 따분했고, 재미있는 장르 소설은 너무 쉽게 휘발되었다. 나의 마음에 오래 남아줄 소설이 필요했고, 좋은 소설이란 나를 대입해 볼 수 있는 소설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러니까 나를 들여다보는 소설, 내가 모르던 나의 치부까지 드러내어 결국 내가 나로 남을 수 있게 도와주는 소설 말이다. 지금의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춘을 보내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말은 통통 튀는 탱탱볼처럼 기대감을 담고 있다기 보다는, 정말 어디로 튀어야 좋을지 모르고 방황하는 두려움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마음마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흘러가던 나의 20대에 이 책을 만나 행운이다. 누군가가 너무 미울 때는 차라리 사랑해버리라는 말처럼, 나의 일그러진 마음에도 맛있는 요리를 하나 대접하고 싶어진다. 연어 덮밥에 들어가는 와사비를 깨물었을 때처럼 코 끝이 찡하다가도 끝내 후련하다.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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