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태소 Sep 13. 2023

글을 위한 근육의 모양

8月,  김화진의 「근육의 모양」을 읽고

  근육은 정직하다. 매일 매일의 태도가 모여 척추를 곧게 세워주고, 무릎의 부담을 덜어준다. 돈이나 명예 등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많은 것 중 드물게도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로또 번호와 달리 조상님이 와도 덤벨에 살포시 앉아 영혼의 무게를 더해주는 것뿐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근육, 나아가 몸은 적절하게 점검과 성찰을 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가 쌓여서 현재를 만들고,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타자를 두드리는 내 구부정한 자세가 곧 허리 통증으로 돌아올 것을 손쉽게 예측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재인과 은영은 이 정직한 근육을 성실하게 연마하기 위한 필라테스 수업을 통해 만난 사이이다. 단단하지 못한 재인과 단단한 은영의 몸은 뜻밖에도 수업을 통해 단단한 마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일, 쓰임을 모르던 근육을 발견하는 일은 몸과 마음에 주체성을 불어넣으며 재인에게 응원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재인의 ‘해본 것’ 리스트는 타인에게서 온 상흔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인 흔적으로 탈바꿈한다.


“그 리스트는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누가 날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내가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야.”


  재인에게 근육으로 남는 것은 ‘해본 것’ 리스트이다. 그렇다면 나의, 몸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근육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약간의 고민을 거치면 금방 답을 알 수 있다. 바로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근육처럼 정직하다. 내가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보인다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할 정도이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아예 손을 놓았더니 가장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에세이조차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언제든 더 굳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글근육’인 것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면, 꾸준히 키워주고 내 길을 잘 걸으면, 점점 달릴 수 있는 거리가 길어지고 들 수 있는 무게가 늘어나듯 힘을 낼 수 있게 되리라는 의미도 된다고 볼 수 있다. 훗날의 내가 나를 원망하지 않도록, 척추를 곧게 펴고 정성스럽게 글을 빚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은영의 “겁먹지 말고 몸을 확 넘겨야” 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by. ppin

작가의 이전글 자신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