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月, 김화진의 「근육의 모양」을 읽고
근육은 정직하다. 매일 매일의 태도가 모여 척추를 곧게 세워주고, 무릎의 부담을 덜어준다. 돈이나 명예 등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많은 것 중 드물게도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로또 번호와 달리 조상님이 와도 덤벨에 살포시 앉아 영혼의 무게를 더해주는 것뿐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근육, 나아가 몸은 적절하게 점검과 성찰을 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가 쌓여서 현재를 만들고,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타자를 두드리는 내 구부정한 자세가 곧 허리 통증으로 돌아올 것을 손쉽게 예측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재인과 은영은 이 정직한 근육을 성실하게 연마하기 위한 필라테스 수업을 통해 만난 사이이다. 단단하지 못한 재인과 단단한 은영의 몸은 뜻밖에도 수업을 통해 단단한 마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일, 쓰임을 모르던 근육을 발견하는 일은 몸과 마음에 주체성을 불어넣으며 재인에게 응원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재인의 ‘해본 것’ 리스트는 타인에게서 온 상흔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인 흔적으로 탈바꿈한다.
“그 리스트는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누가 날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내가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야.”
재인에게 근육으로 남는 것은 ‘해본 것’ 리스트이다. 그렇다면 나의, 몸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근육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약간의 고민을 거치면 금방 답을 알 수 있다. 바로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근육처럼 정직하다. 내가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보인다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할 정도이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아예 손을 놓았더니 가장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에세이조차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언제든 더 굳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글근육’인 것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면, 꾸준히 키워주고 내 길을 잘 걸으면, 점점 달릴 수 있는 거리가 길어지고 들 수 있는 무게가 늘어나듯 힘을 낼 수 있게 되리라는 의미도 된다고 볼 수 있다. 훗날의 내가 나를 원망하지 않도록, 척추를 곧게 펴고 정성스럽게 글을 빚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은영의 “겁먹지 말고 몸을 확 넘겨야” 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by. pp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