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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Sep 13. 2023

자신에 대하여

8月, 김화진의  「꿈과 요리」,「근육의 모양」을 읽고

「꿈과 요리」


“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동경한다.” 


  수언과 솔지의 관계는 친구 사이의 내밀한 감정을 세세하게 드러낸다. 수언은 솔지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어디에 도착하고 싶은지를 묻다가 어디에 도착해있는지를 생각해본다. 대학생 때부터 시작된 둘의 관계는 어디에나 있을 법하다. 수언은 솔지를 통해 자신을 마주한다. 그렇게 마주하며, 평가하며 서로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수언은 그 생각의 밑바닥이나 가장자리에 끄트머리가 살짝 들려 있는 아주 얇은 껍질을 살살 떼어내 보면 거기에는 부러움이 있었다며 솔지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발견한다. 수언은 자신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한 것까지만 후회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누구를 탓하며 핑계를 대는 것도, 연극적으로 과장하며 자신을 포장하는 것도 싫었다. 그런 수언은 자신과는 많이 다른 솔지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다는 마음은 오히려 솔지를 더욱 신경 쓰게 만든다. 그렇게 더 자세히 바라보다 보니 망하지 않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만나던 둘은 수언이 상을 탔다고 말하게 된 어느 날, “밑바닥은 그렇게 보여주자고 마음먹는다고 보여지는 게 아니라 둑처럼 터지는 것이었다.”의 구절이 묘사하듯 터져 나오는 그간의 기억들을 마구 내뱉는다. 서로가 서로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외치는 듯한 말들은 어쩌면 가장 솔직하게 그들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다. 그 날 이후 수언은 늘 꾸었듯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꿈에서 수언은 우산 없이 온몸으로 비를 맞았다. 솔지와 함께 맞았다. 


“맞을 만한 비였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을 통해 채워 삼킨다. 삼킨 것들은 나를 단숨에 변할 수 있게 만들진 못하지만, 미세한 조각이 되어 살에 박히고 피에 흐른다. 그렇게 꾸준히 누군가를 만나며, 관찰하고 동경하면 그 조각은 어느새 나의 한 부분이 된다. 조각 조각들이 내가 되진 못하지만, 어딘지도 모를 곳에 남아 숨쉬며 나를 지킨다. 그렇게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 처음은 호기심 그 다음은 동경 그 다음은 사랑이었다. 난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질투한다. 질투는 곧 내 힘이 된다. 미워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하는 힘으로 풀어낸 감정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되고, 발전하고 싶은 원동력이 되었다. 가장 은밀한 속내를 드러내는 과정은 분명 수언과 솔지처럼 사이를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꺼내기가 힘들었던 만큼,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일은 거센 비도 맞을 만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근육의 모양」


“선택은 흔적이 되고.”


  재인은 ‘한다’와 ‘하지 않는다’ 사이에서 ‘한다’쪽을 택하는 사람이다. 결과적으로는 무조건 남는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재인이 적은 ‘해본 것’ 리스트는 재인의 선택의 목록을 보여준다. 그 기록읕 변화의 목록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기록을 다시 확인할 때마다 재인은 “그런 게 쌓여서 내가 되었지, 하고 생각했다”. 필라테스 강사인 은영은 그런 재인을 보며 “마음이 약해서 단단하게 걸어 잠그는 유형의 사람들을 보면 조금씩, 운동으로 다져진 몸만큼이나 단단한 은영의 마음이 물렁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상사의 모양이 바뀔 때마다 은영은 본인의 마음도 바뀌어서 힘들어했다. 그렇게 은영은 좋은 직장을 관뒀다. 은영에게 동기 예은이 남긴 “마음을 너무 붙인다”는 말은 그 순간 은영을 무너지는 것 같게도 하고 다시 살아나는 것 같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을 관뒀음에도 여전히 은영은 남들은 훌쩍훌쩍 넘어가는 시기에 혼자 찐득하게 머물러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불량 액체괴물이라 칭한다. 손에 자꾸 묻고, 모양도 만들지 못하는 불량 액체괴물. 은영과 재인은 다르다. 그들은 필라테스 수업을 통해서만 대화한다. 그렇지만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을 느낀다. 은영은 꾸준히 자신의 몸을 만들면서 수강하는 고객을 만난다. 그러면서 자신을 더 섬세히 바라본다. 반면, 재인은 몸에 생긴 근육을 통해 해본 것들이 상처가 아닌 흔적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나도 재인과 같은 사람이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 크고 작은 위기가 있을 때, 실패를 마주했을 때 의 모든 순간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재인처럼 리스트를 작성하진 않지만,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겠는 순간마다 내 소중한 경험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되면 미세한 성장이 보이고 그걸 원동력으로 삼아 또 하루를 살아간다. 내가 지나온 어쩌면 고단했던, 아팠던 일상이 상처가 아닌 근육으로 남아 지탱할 힘을 만들어준 것은 나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근육의 모양을 여러 차례 읽은 지금 시점에 이러한 의문이 든 것이다.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한 번 잡히면 그 전보다 강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대로 혹은 그 이상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최악의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최악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삶이기에 반복되는 상실의 경험은 점점 더 내가 일어나는 것이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을 거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통해 오는 상실감. 이미 알고 있는 고통이기에 더 두렵고 무섭기도 하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처가 아닌 흔적으로, 근육으로 바라보는 것 밖에 방법이 없기에 매번 나의 성장에 주목하곤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훈련의 과정, 상실과 계속되지 않는 일들에 대한 반복이 공허함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냥 그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by.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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