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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Sep 13. 2023

열등과 우열을 바라보기

8月,  김화진의 「꿈과 요리」를 읽고

  급속도로 타인과 친밀해지는 경험, 그것은 동일한 관심사를 공유할 때 이뤄진다. 시가 좋아서, 권리에 관심이 많아서, 식성이 비슷해서 등의 이유로 어색하기만 했던 타인이 자주 연락하게 되는 지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관심사가 더욱 주변에서 찾기 힘든 것일수록, 빠르게 타인과 친밀해진다. 솔지와 수언은 대학교를 다닐 때는 말을 거의 섞어본 적 없는 같은 과 동기에 불과한 사람이었으나, 졸업 이후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여전히 관심있는 분야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친해지게 된다. 수언은 솔지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계속 마주한다. 그들은 가장 멀었다가 가장 가깝게 된다. 그러나 이 관계는 어딘가 삐그덕거린다. 솔지는 자신의 꿈을 지속하는 수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수언은 꿈을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잘 지내고 있는, 대학 시절에도 항상 열정적으로 사람들과 ‘의미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던 솔지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어설픈 교집합으로 시작하여 서로의 열등과 우월을 일방적으로 주고받는다. 일방적인 교환은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수언에게 언제나 거절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솔지와, 솔지의 행동들이 허세나 부풀린 것들로 보이는 수언의 생각들은 이들의 시선이 정면을 향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굴절되어 서로의 발치를 대강 보고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헤아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모난 감정들은 결국 12월 31일 솔지네 집에서 같이 저녁식사를 하다가, 수언이 영화비평공모에 당선된 소식을 알리며 표체 밖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다. 


  꿈과 요리를 처음 읽었을 때 가만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거울처럼 좋아하는 관심사가 같아서 친해졌으나, 닮은 만큼이나 서로를 열등하고 우월했던 그런 관계가 있었다. 그러기에 서로는 벗어날 수 없었고, 이는 어찌보면 지독한 사랑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수언의 기준이 알게 모르게 솔지였던 것처럼, 나 또한 알게 모르게 그 기준이 그 친구였고, 그 친구 또한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갈망하고 또 붙어있기를 즐겼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비참해지기도 했다. 곪은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누군가가 아프거나, 힘들어하는 방향으로, 혹은 둘 다 서로를 가만두지 못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어하는 방향으로. 


  솔지는 글의 초반부에 나왔듯이 카나페나 뇨끼나 뱅쇼 같은 것, 그럴듯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보이는 요리를 만든다. 그러한 요리는 수언에게는 그저 막 걸쳐서 몸에 설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솔지는 그러한 음식들이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솔지는 저녁을 차려서 같이 나누어 먹을 수언이 있었기에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이뤄낸다. 수언은 솔지가 생애 전반에서 모든 게 수언보다 낫다고 생각했기에 수언에게 삐뚠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마음은 수언이 솔지가 못하는 단 하나, 수언과 솔지가 동시에 꿈꿨었던 것을 꾸준히 하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수언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뤄낸다. 둘은 같은 관심사로 급속도로 친해지고, 동시에 열등과 우월을 주고 받지만 이러한 열등과 우월은 둘을 어쨌든 지속하게 만든다. 요리를 지속하게끔, 비평을 지속하게끔. 



  어떤 식으로든 마음은 터지게 되어있다. 날선 대화로 서로를 상처주며 날것의 열등과 우월을 드러낸다. 그러나 분명 수언과 솔지처럼 그러한 아슬아슬한 관계를 통해 우리는 나아갔다. 공통된 관심사를 향해 나아갔고, 또 우월감을 느끼는 부분을 향해 나아갔다. 각자의 것들이 설익지 않고 꽤나 멋져보일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동력 삼아 나아갈 수 있었다. 대부분의 긴밀하고도 탯줄을 공유한 듯한 상대와의 관계는 공통점이 넘실거리는 만큼이나 그것을 파괴할 만큼의 지독한 감정들이 흉흉하게 도사린다. 어떤 식으로 보듬어야 할까? 자신이 느끼는 쓰레기 같은 감정을 고백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게끔 모색하는 것. 결국엔 솔직하고 뚜렷하게 자신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솔지와 수언은 수언의 공모전 소식을 통해 서로의 밑바닥까지 보여준다. 서로가 일방적으로 퍼붓고 또 껴안을 수밖에 없었던 우월과 열등을 공유한다. 솔직하고 뚜렷하게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은 서로를 제로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발치만 헤아리지 않고, 눈빛을 헤아리게 된다. 패스츄리 같은 레이어를 걷어내고 서로를 공유하게 된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솔지기도 하고 수언이기도 했다. 우리는 솔지나 수언처럼 서로를 아끼고 애정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비난하고 서로가 다치길 바랐다. 우리는 서로 힐난하고 조심스럽게 비판하고 뻔뻔하게 우월감을 주장하며 싸웠다. 그리고 멀어졌다가 다시 적당한 거리를 찾아갔다. 그런 식인 거다. 어떤 거울 같은 관계는 열등과 우월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양극의 감정을 통해 나를 나아가게 한다, 그게 어디로든. 그러나 그런 관계를 다시 적당하게 유지하려면 솔지와 수언처럼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날이 와야 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런 것들을 완만하게 유지하고 또 바르게 애정하기 위해 나의 열등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것을 둥글게 고백하는 연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솔지와 수언처럼 서툴게 시작했으나 점차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그랬기에 솔지와 수언의 이야기는 단순히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by. 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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