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태소 Sep 13. 2023

추적

8月,  김화진의 『나주에 대하여』,「근육의 모양」을 읽고

  네번째 발가락은 왜 달려있을까. 사람이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고민을 나역시 하지 않고 곧장 답을 얻었다. 고등학교 1학년, 패기넘치게 주말 아침도 반납하고 유도관에 나갔다. 아무래도 자습보다는 유도가 나으니까. 기숙사에 살아야했던 우리는 주말 오후까지 항상 자습이 배정되어있었고 유일하게 토요일 오전만 다른 방과후 활동을 골라할 수 있었다. 유도는 자습으로부터의 도피이자 뜨거운 17살의 땀방울이었다. 체급이 맞지않는 친구와 투닥거리며 겨루기를 흉내내다 뚝 소리와 함께 어딘가에 일시적인 통증이 일었다. 몸을 아무리 살펴도 흔적조차 남지 않은채 사라진 소리의 근거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다음날 교회 선생님에 의해 발견한 보랏빛의 오른발 네번째 발가락은 끝내 금이 가있었다. 아주 얇은 뼈에 새겨진 대각선의 선. 전문가도 확대해서 찾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실금이 내 발가락을 보라색으로 만들다못해 엄지발가락과 동일한 크기로 만들었다. 그날부터 통증은 시작됐다. 발을 딛자마자 올라오는 욱신거림에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목발을 짚었다. 고작 발톱깎을 때나 눈길을 줄 발가락이 끝내 내 겨드랑이와 온갖 전신의 근육통을 감내하게 하는구나. 아프면서 내 스스로 웃겨 짜증났던 17살의 2주였다. 


  <근육의 모양> 재인은 필라테스 강사 은영과 함께 나와 비슷한 깨달음을 배운다. 재인은 살면서 본인이 겪은 상처들을 ‘해본 목록’에 넣는다. 본인의 마음에 열심히 귀기울여 얻은 선택이건만 파혼한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무책임한 일이라며 꾸중한다. 본인 마음에 충실한 대가가 책임없다는 꾸중이라니, 재인은 억울한 연말을 보낸다. 그런 그녀에게 은영은 말 한마디, 눈빛의 위로를 주는 인물이다. 1회에 7만원이 넘는 비싼 운동이라 몇 번 만나지도 않지만 외로운 날의 저녁에는 운동이 있어 안도하는 재인이다. 


  살면서 겪게된 일종의 큰 상처들을 ‘해본 것’ 목록에 넣으며 담담히 살아갈 이가 과연 평온한 이일까. 목록이란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지는 물건이다. 정리하고 또 곱씹어서 써내려가는 재인은 자신이 겪은 수많은 격정들을 계속해서 되돌아간다. 그런 재인이 수업 중 약한 모습을 보이자 은영은 말한다. “갈 수 있는데, 안가는 거예요. 재인씨가.”, “잘하고 있어요. 계속 거기가 어딘지, 찾는 부분을 찾으려고 애쓰잖아요” “그게 보이나요?” “손을 대고 있으면 알 수 있어요.” 


  상처를 무시하지못하고 곱씹는 재인은 계속해서 그 상처가 어디서 왔는지 찾는다. 찾는 부분을 찾는다는 그 말처럼. 그건 결코 나약해서가 아니다. 내 근육의 움직임이 어떤지 집중하는 것이다. 아파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 근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아픔이 어디서 오는지 미세한 고통을 찾으려들지않는다면 영영 찾을 수 없다. 우린 어쩌다 겪어보지않아도 될 고통을 겪었고, 그건 어쩌다보니 잘 쓰이지 않던 구석퉁이 근육이 쓰였기 때문이다. 이미 상처난 근육을 다시 이전으로 돌릴 순 없다. 이왕 알게 된 근육이라면 과감하게 더 찾아보자. 그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나의 금이 간 네번째 발가락은 근육은 아니어도 나의 신체 중 일부다. 언제나처럼 날 받쳐주고 있었지만 존재를 몰랐던 것 뿐. 다른 근육들도 신체를 빼곡히 구성하고있는 일부다. 그렇다면 내 몸에 위치해 이미 생겨버린 근육통을 아파도 뭘 어찌 하겠는가. 더 단단해지는 중이라고 생각하자.  


『나주에 대하여』

  지난 상처를 파고드는 이는 재인뿐만이 아니다. <나주에 대하여>의 ‘나’도 마찬가지이다. 재인은 본인의 마음을 계속해서 어루만지며 사랑하는 이라면 ‘나’는 지난 연인을 놓지 못하고 끝내 그런 나를 사랑하기 위해 연인의 전 연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죽은 연인 규희로부터 은근한 비교와 외면을 받았다. 사람과의 관계에 적극적이며 활발한 ‘나’는 그런 자신과는 다른 규희에게서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점잖고 본인만의 틀이 완벽한 규희와 닮은 나주는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차지한 장애물이다.


  규희는 둘 사이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 우린 다르다며 일관했고, 그런 규희로부터 외면받은채로 남은 감정은 나주에게로 향했다. 규희는 나를 보며 ‘다르다’며 한숨을 지었고, 나주는 그런 나를 보며 부럽다고 말한다. ‘나’는 그녀가 본인의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들어오고 나서도 그녀의 하루하루를 모조리 관찰한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괴랄하다 여겨질만큼 나의 관심은 끊임없이 나주를 쫓는다. 그러면서도 규희를 까맣게 잊은 듯한 나주에게 은근히 규희의 기일을 알린다. 평온하기만 한 그녀의 일상에 틈을 내겠다는 듯 보인다. 이야기 중간에 나오는 나주의 과거 스토킹 피해 이야기는 충분히 인물에 대한 안타까운 서사를 보여주지만, 주인공인 ‘나’에게 그건 어떠한 사건도 되지 못한다. ‘나’에게는 규희와 그런 규희와 닮은 나주만이 중요하다.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하는 감정이 들 수 있는 사람은 규희와 본인뿐인데, 계속해서 나주를 관찰하다보니 자기자신을 투영하게 된 것이다. 그런 기묘하면서도 끈질긴 관심 끝에 나주가 규희의 사망소식을 알게되었고 이제야 ‘나’는 사과한다. 


  나의 공감선에서는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위에 쓰인 표현대로 ‘나’의 행위가 괴이하고 지나치다고 보인다. 그러면서도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 상실의 빈자리를 혼자만 채우는 것은 너무도 외롭고 힘겨운 일이니, 규희에게서 기억을 찾고 찾다 흔적이 남았을 나주에게로 향한 ‘나’의 방식이 안타깝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지만 재인은 본인에게서 그 흔적들을 찾고, ‘나’는 타인과 비교하며 찾는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결론이 난 것이다. ‘나’의 추적 속에서 비춰지는 자신은 모든 것이 못났다. 활발한 성격도 엄지손가락도. 내게 다정하지 못한 채 집요하게 들추어보는 행위는 상처만 남긴다. 그래서 ‘나’도 그런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나주에게도 끝내 상처를 주었다. 그럼 다시 혼자가 된 ‘나’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책에 쓰인 대로 나와 닮은 나주를 사랑했는데, 사랑의 대가가 불행의 전이라면 이 선택은 옳지 않았다.



by. 라일락



작가의 이전글 26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