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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Nov 12. 2023

사랑과 SF

사랑에 대하여 1 :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를 읽고

이유리, 김서해, 김초엽, 설재인, 천선란, 이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앤솔러지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는 SF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단편들의 엮음이다. 다섯 명의 작가가 설계한 세계란 그들이 쓰고자 하는 어떤 것을 부각하기 위한, 극대화된 세계일 것이다. 하나씩 따라가보자.

이유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에는 ‘감정전이 기술’이 가능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작가가 던지는 물음은 ‘감정도 전이가 가능한가’다. 연인과 헤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연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남아있기에 고통스러운 주인공과 결혼했으나 남편의 외도로 인해 지속되는 사랑의 감정에 자신 없어진 주인공의 친구는 서로의 감정을 전이한다.

김서해의 ‘폴터가이스트’에는 주인공에게만 들리는 ‘이상한 소음’과 갑자기 세상에 나타나 ‘사고’를 발생하게 만드는 ‘거대하고 까만 구’가 등장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사고’에 대한 사람들의 ‘무심함’이다. 사람들은 뉴스에서 보도되는 사고를 날씨예보를 전하듯 아침식사 대화로 가볍게 나눈다. 거대하고 까만 구가 나타나 ‘사고’를 발생하게 해도 관심은 ‘사고’에 실리는 것이 아니라 ‘까만 구’에 실린다.

김초엽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에는 인공피부 이식이 가능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로봇의 사랑’인 듯하다. 주인공은 바이오 해커 거리에 위치한 솜솜피부 관리숍에서 한 유명한 안드로이드, 수브다니의 인공피부 이식을 하게 된다. 수브다니는 안드로이드에서 인간으로 피부이식을 했고, 이제는 인간에서 다시 기계로 피부이식을 하려고 한다.

설재인의 ‘미림 한 스푼’은 지구를 멸망시키러 온 외계인 ‘솜새끼’가 벌인 지구 멸망 공모전의 상황, 즉 ‘지구 멸망 직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지구 멸망 직전의 거대한 세계 흐름과 일상을 견뎌가는 개인의 삶을 겹쳐서 제시한다. 극단의 세계 속, 극단으로 몰린 미성년자의 불행과, 불행 속 구원 서사를 내포하고 있다.

천선란의 ‘뼈의 기록’은 로봇 장의사가 존재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로봇 장의사 ‘로비스’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그가 염하는 고인과 고인의 유가족과의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이는 김초엽의 주제와 비슷하게 들릴 수 있으나, 김초엽은 로봇과 인간이라는 다른 피부를 가진 개체의 사랑을 다루었다면 천선란은 로봇이 느끼는 생의 마지막과 고인의 명복이라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으니 인간이 아닌 다른 시선(로비스의 시선)으로 인간의 ‘죽음’과 ‘생’을 바라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다섯 편의 단편은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묶어 버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은 복잡하고 커다란 면적 안에 각각으로 들어가 있다. ‘감정’, ‘사고’, ‘로봇과의 사랑’, ‘불행과 구원’, ‘죽음과 생’이라는 각각의 키워드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각각의 단편을 SF라는 형식으로 바라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SF세계란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창조에 의해 설계된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세계를 설계할 수 있는 설계자다. 그렇기에 SF라는 장르는 작가의 손에 현미경을 쥐어 준다. 현미경으로 확대하고 관찰한 개인들은 부풀어 오른다. 실패와 소외가 부푼다.

이번 프로젝트가 ‘사랑’인 만큼 사랑이라는 테마와 SF라는 장르적 특징을 접합하여 바라보자. ‘사랑’이 다가온 순간을 떠올려본다. ‘사랑’은 개인을 세상과 가장 밀접하게 하기도 하고, 내부로 끊임없이 침잠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한 점에서 ‘사랑’은 그 자체로 SF의 장르를 가지고 있다고 조금은 비약하여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내가 프로젝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랑’은 그런 ‘사랑’의 SF적인 성격일 것이다. 신경질적으로 파고들거나, 집착하거나, 혹은 완전히 무심해지게 되는 것들. 마구잡이로 어떤 것을 확대하고, 어떤 것을 축소하는 ‘사랑’이라는 장르를 파고들고자 한다.

by. 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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