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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Mar 25. 2022

책과 함께 꿈꾸기

3월 : 내가 생각하는 꿈에 대하여

“The right book will always keep you company”

좋은 책은 항상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서점인 Steimatzky Books의 광고 캠페인의 문구이다. 서로 다른 여섯 권의 책을 읽다 잠든 주인공 옆에는 간달프, 셜록홈즈, 삐삐 등이 함께 누워있다. 책을 읽다 잠들면 책의 등장인물이 나와 함께한다. 꿈을 나누고, 함께 꿈꾼다.    

 



꿈을 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잠에 들어 꿈을 꾸는 것과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를 간절히 바라며 꿈을 꾸는 것이 있다.


위의 광고처럼, 책을 읽다 잠에 들어 등장인물과 함께 꿈을 꾸는 것. 이는 꿈꾸다는 단어가 지닌 두 가지 의미에 모두 해당할 것이다. 나 역시 책을 통해 꿈을 꾸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꿈을 꾸게 만든 책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1. 심스 태백의 그림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누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면 나의 대답은 항상 미술놀이였다. 표현할 여백만 있다면 공간을 구성하여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어떤 종류의 종이든 자투리만 있으면 이것저것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고 도구에 구애 없이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나가곤 했다. 그림은 나에게 공기와도 같았다. 항상 내 안에 존재했고, 자연스레 스며들어 내 일상을 차지했다. 특히 일러스트레이터의 세계에 매혹을 느꼈다. 단순 삽화뿐 아니라 출판 디자인, 애니메이션, 공익 광고, 멀티미디어와 순수 회화까지 호기심을 넓혀가며 취향을 찾아나갔다.      


그 꿈의 시작에는 심스 태백 작가의 동화책이 있었다. 심스 태백의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 ‘옛날 옛날에 파리 한 마리를 꿀꺽 삼킨 할머니가 살았는데요’라는 책은 어린 시절의 내가 가장 사랑한 책이다. 또한, 콜라주 기법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의 그림책 속 삽화들은 수채물감, 과슈, 연필, 잉크와 신문지, 포장지, 광고지 등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유쾌하고 매력적인 그의 그림이 좋았다.      


2. 조지 오웰과 닐 포스먼의 통찰력

미술에 대한 꿈을 접고 중학교에 진학하며, 독서에 대한 흥미가 생겨난 가장 큰 이유는 ‘공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우연히 읽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그 책 속에 등장하는 언어와 미디어의 파급 효과는 나에게 자못 충격을 안겨주었다. 「1984년」의 조지 오웰과 「멋진 신세계」의 올더스 헉슬리는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와 예언을 한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조지 오웰은 감시와 통제로 인해 문화가 감옥이 될까 봐 두려워했고, 올더스 헉슬리는 지나친 정보 과잉과 오락거리로 인해 우리가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전락할까 봐 두려워했다. 미디어의 중심에 언어가 있으며 대중적 영향력을 생각해볼 때 창의적 아티스트는 자신만의 신념과 공익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술을 그만둔 후, 독서는 나를 새로운 문화와 언어의 연결이라는 광고의 세계로 이끌었다. 일상에서 자주 보고 접하는 광고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보다 가치 있는 꿈을 갖게 되었다. 확고한 꿈은 대학교 전공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책을 읽은 후, 매체는 가치를 담는 그릇이며 그 중심에 언어가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광고에 있어 언어는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는 매개 역시 언어의 역할이라고. 이후 인문학 중심의 교육을 통해 매체와 미디어를 이해하는 광고인이 되고자 꿈을 키워 나갔다.     


3. 김애란의 문장

고등학교 1학년, 첫 기말고사가 끝난 날, 김애란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서점으로 달려갔다. 전작인 비행운보다는 더 탁한 푸른색과 어디론가 향하는 여성의 뒷모습의 표지. 책장을 멈출 수가 없어 단숨에 다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기약 없는 이별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바깥은 여름.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죽음은 아닐지라도 한때 자신의 전부였던 사람을 마음속에서 지워야만 할 때의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책 속의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밝은 이야기보단 우울한 이야기를 담았기에 김애란의 소설이 더 좋았다. 마냥 아름답고 찬란히 빛나는 것만이 우리의 삶이 아니니까.      


기억 속에 가장 오래 남은 작품인 ‘침묵의 미래’는 언어의 영혼이라는 독특한 화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수언어 박물관에 사는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인 마지막 언어의 화자들을 바라보는 ‘나’, 이 단편을 이끌고 있는 ‘나’는 언어의 영혼이다. 소수언어 박물관은 세계에서 사라져 가는 언어를 보존하고 연구한다. 이곳에는 천여 명의 화자가 살고 있다. 온갖 말들이 바글거리지만 그 말을 이해하는 것은 오로지 화자 자신뿐이다. 그리하여 이곳 화자들은 말을 향한, 말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이라는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간다. 언어라는 소재를 통해 외로움과 소외를 표현한 설정이 놀라웠다. 고독이라는 단어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 중 작가 김애란 그녀가 선택한 것은 ‘언어’다. 언어에 의한 고독, 소외다.      


소설을 읽고 언어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언어가 단순히 사고를 표현하는 도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언어로 이야기하지만 언어와 언어 사이에는 사랑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추억 등의 문화가 담겨있다. 언어는 문화를 담고 있다. 언어는 수단과 도구를 넘어 인간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그 자체로 문화가 된다.      


이후 대학에 와 국어학 수업을 들으며, 침묵의 미래를 다시금 읽어보았다. 소수언어들을 기반으로 한국어의 뿌리를 탐구하는 언어 조사에 대한 내용을 배울 때, 사라져 가는 소수언어의 고독을 담은 소설이 무심코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라질지도 모르는 소수 언어들을 기반으로 우리의 언어의 뿌리를 조사하는 과정이 신기하기도 했고, 한 편으론 한국어 어원 조사를 통해서라도 소수 언어들의 역사가 기록되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국어학은 언어학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고, 국어학도는 동시에 언어학도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언어를 알리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게 우리의 언어를 기반으로 한 광고가 됐든, 우리의 언어를 담은 책을 편집해나가는 과정이든 말이다.      


4. 정세랑의 시선

현시점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가를 고르자면, 정세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세랑은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다. 정세랑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녀가 가진 세계관이 드러나곤 한다. 그녀의 소설은 환경 파괴와 사회적 문제 등 시대를 아우르는 주제를 관통하면서도 인간과 지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어딘가 살아가고 있을 법한 등장인물, 독특하고 기발한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담아낸다. 정세랑의 시선이 담긴 동화적 세계는 낯설고 흥미롭다. 2만 광년을 날아온 외계인과 사랑에 빠지며, 망원경을 통해 얼음 혹성을 구경한다. 가족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나기도 한다. 또 손가락을 찾기 위해 과거로 떠나기도 하고, 지구와 똑같이 꾸며낸 모조 지구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비현실적인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담겨있다.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정세랑의 소설은 인간의 욕심으로 지구는 멸망할지도 모르지만, 지구를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정세랑의 따뜻한 시선은 독자에게 자신의 삶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들면서도 더 나은 삶을 고민하게 만든다. 애정 어린 시선과 함께 기후 문제에 주목하고,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우리 사회와 맞닿아 있는 주인공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녀가 지향하는 건강하고 단단한 사회의 모습과 더불어, 정세랑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낯섦에 있다. 재미난 상상력과 함께 발휘된 낯섦은 독자에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통통 튀는 상상력과 명랑한 발상으로 기후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방법이 거창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옷을 고쳐 입고, 채식을 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지구를 지킬 수 있음을 알려준다. 기후 변화에 맞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해 직접적이고 완벽한 답을 주진 않아도, 따라 해도 좋을 법한 쉽고 재미난 방법을 제시한다. 정세랑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지구를 지켜나간다. 나 역시 그녀의 책을 읽으며 세상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곤 했다. 기후위기 다큐를 찾아보고, 노동자와 산업재해에 관련된 영화를 시청했다. 시야를 넓혀나갔고 가치관을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좋은 책은 항상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


책은 편안한 꿈을 꾸게 돕기도 했고, 큰 꿈을 꾸게 만들기도 했다. 2022년에는 어떤 책이 나와 함께 할지 궁금해진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꾸고, 많이 이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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