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태소 Nov 12. 2023

기억하지는 않아도, 지워지지가 않아요

사랑에 대하여 1 :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를 읽고

대상을 잃고 버려진 사랑을 홀로 에워싸는 사람과, 방향은 정해져있지만 도무지 들지않는 감정을 위해  애써 노력하는 사람 중 누구에게 "사랑"은 더 가혹한가.


괴로움밖에 남지않는다면 차라리 이 두 사람을 합하여 사랑의 가혹함을 외면하자! 언제나 설레고 아름답게만 남을 수 있도록 사랑을 돌려쓰자. 이러한 발상에서 본 소설의 "감정전이"가 생겨난 것으로 추측하며 이 글을 쓴다.


수진은 5년을 넘게 사랑을 이어온 연인 성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다. 성정체성의 발견을 이유로 댄 이별은 지난 모든 시간을 무화시켰다. 영원을 꿈꾸며 부풀던 사랑이 한순간 의미를 상실하고 폭싹 가라앉았지만 함께 키우던 고양이 순대의 만성신부전증은 수진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당장 순대의 병원비를 대기에도 바빠 슬픔을 떠올릴 시간은 없었다. 성재의 자리는 그저 지워지지않고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때 20년지기 친구 영인이 감정전이를 제안한다. 수진에게는 쓸모없어진 사랑을 남편의 외도로 상처입은 영인이 원했다. 수진은 병원비가 급했고 영인은 사랑이 필요했으므로 이 둘은 감정전이를 한다. 이후 뻥 뚫려버린 감정의 공석을 영인이 소개한 동료변호사 영욱을 만나며 채워본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의 것이 아닌 듯한 감정은 수진에게도, 영인으로부터 빈껍데기의 사랑을 받는 민후에게도 불편했다. 한편 데이트 중 알게된 영욱의 감정전이 이력은 수진의 걸음을 다시 한번 멈추게 한다.


우린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이는 먼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아야한다. 나는 두 가지를 떠올려본다. 우선은 사랑은 자신에게 특정한 대상에게만 향하는 감정이다. 내가 사랑하는, 꼭 그 사람이어야만 성립하기에 만일 그 사람이 떠나버리면 더 이상 사랑은 의미가 없다. 사랑의 대상이 떠남은 곧 사랑의 존재자체도 사라짐을 의미한다. 고양이 순대처럼 함께하다 남겨져 혼자 책임져야하는 사랑은 아름답지 않다. 부재하는 대상에게 들이는 감정은 이제는 같이 대응할 이가 없기에 제멋대로 모양을 바꾼다. 애틋해하다가도 질색한다. 계속해서 그 사람과의 추억, 잔인한 이별의 순간까지 되새기다가 언젠가 기억하기를 그친다. 기억하지않아도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둘째로는 그저 내 사랑을 당시에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쏟는 것이다.   "누군가"는 누구라도 될 수 있고, 사랑은 그저 술어가 된다. 자신에게 샘솟는 사랑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그 객체만 바꾼다. 그러니 그 객체가 아무리 바뀌어도 나의 사랑은 퇴색되지않는다. 언제나 설레고 아름답다.


존재를 잃거나 객체를 잃거나 둘 중 하나라면,


감정전이가 허용되는 소설 속의 세계에서는 사랑에 너무도 질린 누군가가 후자의 것으로 그 개념을 정의한 듯하다. 사랑이 아무리해도, 너무도 사랑이라 결국 포기하기로 한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꼬질해지고 볼품없어진 사랑을 누군가는 필요로 한다니, 다시 깨끗하게 씻어내고 가장 예쁘던 순간으로 다른 이에게 전해준다. 갖고놀던 인형을 세탁해 이웃 동생에게 주는 꼴이다. 그렇게라도 모두가 평안해질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느 누구도 편해보이지 않는다. 몇차례 감정전이를 반복하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영욱을 제외하고 나면 수진, 영인, 민후 모두가 본인의 것이 아닌 감정에 기시감을 느낀다.


아, 아무리해도 사랑은 어렵다. 왜 내가 주고싶고 받고 싶은 사람에게 향할 수 없고, 그렇게 갈 길 잃은 사랑은 그 자리에서 기화되지도 않고 남아 썩어문드러질까. 그렇게 남에게 주고나면 차라리 속시원해지게 아예 사라지지, 그 자리는 지워지지않고 빈자리를 남긴다.  결국 내 존재를 잃기 싫어 객체를 바꾸기로 택했지만 그 역시 존재의 부재로 기억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1988년도 가수 장혜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의 한 가사로 시작한 사랑을 2013년에 발표한 f(x)의 노래로 이어본다. “힘들게 날 뽑아낸다고 한대도 평생 그 자릴 비워두겠지”




by. 순애플

작가의 이전글 내게 남은 건 나밖에 없지만 사랑할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