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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Nov 12. 2023

사랑이 지나간 자리

사랑에 대하여 1 :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를 읽고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라는 단편은 제목 그대로 여주인공의 이별 이후 남은 사랑의 감정을 오랜 친구에게 전달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여주인 공은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 힘든 나날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결혼 생활 중 어려움을 겪고있던 친구가 자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전달해달라고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감정을 전이해주는 특별한 회사에서 이 둘은 서로의 감정을 주고 받는다. 여주인공은 감정 전이 이후 비어버린 감정의 공간을 채우고자 친구가 소개해준 사람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지만, 그 남자 역시 감정 전이를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알고보니 그 남자는 연인들 과 헤어질 때마다 감정 전이를 통해 감정을 비워내고,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글을 쓰려고 책의 내용을 떠올려보니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생각났다. 이 영화에서도 이별의 아픔을 겪던 남녀가 그동안의 추억과 감정을 지우는 과정에 참여한다. 얼핏 보기에는 이런 사랑이라는 감정의 삭제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일상과 감정들과 삶의 일부분을 공유하던 사람과 단번에 이별한다는 건 신체의 일부분을 떼어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는 통상적으로 이별의 과정이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다. 연애라는 낭만적 감정만을 생각하면서 그 이면의 적 막함, 어색함 그리고 이별의 과정에 대해서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이별을 전제하지 않을 뿐더러 더 나아가 이별이 없을 것이라 자신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막상 이별을 맞닥뜨렸을 때의 감정적 충격을 생각하면, 연매가 끝날 때마다 감정 전이를 하면서 고통을 털어내는 남자의 이야기가 솔깃하다. 어쩌면 나도 이별의 감정이 두려워서 이별하지 않을 관계연애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동료 모두에게 있어서 들을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관계를 단절하기는 쉽다. 관계의 끝을 고하는 단 한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 후의 감정은 길다.


 그렇지만 감정 전이가 불가능한 세상의 시간 속에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친구를 사귀고, 누군가는 떠나보내며 내게 남은 것은 분명히 있다. 폭품 같은 감정들이 지나고 난 뒤 남은 사랑의 자리에는 그들과 나누던 시간과 말 한마디 한마디, 서로 주고받던 눈빛이 남아있다. 그들은 지금 내 곁에 없을 지라도 그것들은 내 안에 남아 또다른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된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느냐고 말하지만 나는 이별까지도 사랑하겠다.




by.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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