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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Apr 14. 2024

안락한 소음 속에서

사랑에 대하여 4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미술관에 가면 다른 이들보다 한 발자국 뒤에서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 작품을 더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각자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도 나름 흥미롭기 때문이다. 때로는 작품보단 해당 작품을 온전히 느끼고 경탄하는 이들의 얼굴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은 적도 있었다.


이번 겨울, 혼자 휘트니 뮤지엄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휘트니 뮤지엄 6층에서는 Henry Taylor의 특별전이 진행 중이었다. 토요일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인원이 미술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시 작품만큼 기억에 남는 건 역시 관람객들이었다. 어린 소녀가 그려진 작품을 오래오래 보던 흑인 아주머니의 얼굴이 여전히 생생하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아저씨 역시.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휘트니 뮤지엄의 경비원으로 보이던 이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술관의 시큐리티와는 달리 휘트니의 경비원들은 작품 주변 곳곳에 자유롭게 서 있었고, 일반 관람객처럼 전시를 관람하기도 했다. 전시장의 작품을 카메라에 담던 경비원과 눈이 마주쳤고, 웃음을 보이는 그에게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먼저 말을 건넸다. 같이 찍길 원하는 작품이 있냐는 말과 함께 사진을 찍어준 뒤, 특별전에서 중심이 되는 작품들, 해당 전시를 보는 독특한 방법 등도 설명해 주었다. 사진만 부탁했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니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는 이 미술관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야외 루프탑을 꼭 가보라는 마지막 인사도 덧붙였다. 유쾌함은 물론, 그가 소속되어 있는 미술관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잊지 못할 순간을 간직한 채 미술관을 나서게 되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브링리 역시, 누군가에게 이처럼 특별한 순간을 선물했을지도 모른다. 미술관에서 10년간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겪은 실제 경험을 담고 있다는 문장을 시작으로, 그가 적어 내려간 아름다운 순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형의 죽음을 경험한 뒤,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뉴욕의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대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 일을 시작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관람객이 입장하기 전 작품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의 하루는 시작된다. 미술관에선 눈을 감지 않아도 느끼고 싶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근무 중에도 종종 사색에 잠기곤 한다. 작품 사이를 유랑하며 베르나르도 다디가 그린 예수의 그림에서 말문을 막히게 하는 고통의 무게를 느끼기도 하고, 미켈란젤로의 소묘를 보며 경외감에 젖기도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걸작들을 지켜보며 멈춰 서서 무언가를 흠모할 수 있는 기쁨을 느끼고, 예술의 신성한 측면을 찬미하기도 한다. 나아가 일상은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고통 속에 잊혀졌던 감정과 삶의 일상적인 순간들을 다시 찾아가게 된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과의 대화도 어느새 그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푸른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이라는 소제목처럼, 다 같은 푸른 유니폼을 입었지만 미술관에 오게 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각기 다른 배경에서 온 친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근무지도 있지만 보통은 혼자 일하거나 무작위로 배정되기 때문에 그는 자기소개를 새로 할 때도, 일대일 대화를 이끌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는 서서히 대화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야구 뉴스를 신경 써서 확인하고, 열린 질문을 던지며 대화 요령을 쌓아간다. 세상과의 단절을 꿈꿨던 때와는 다르게 타인의 주파수대로 들어가 의사소통을 하기도 한다.


관람객들과의 상호작용 역시 그에게 일종의 위로를 주었다. 분수대 앞에서 동전을 던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간 자신도 아이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리라 다짐하기도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듣는 관람객의 태도를 곱씹으며 탄복하기도 한다. 경탄할 만한 또 다른 작품을 찾아 멀어져 가는 관람객을 보며 자랑스러운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미술관 뒤에 숨고자 했던 그는 점점 이 공간을 이끌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되살린 미술관에 계속 머무르지 않는다. 살아갈 희망을 잃은 채 고독 속으로 숨고자 했을 때와는 달리, 고요하고 단순한 세계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단순한 목표에서 벗어나 살아나가야 할 삶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상실감을 떠올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마주한 낯선 감각을 되새긴다.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그는, 다시금 미술관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상실과 그리움으로 인한 구멍을 희망으로 채운 것은 미술관에 존재하는 안락한 소음들이었다. 그토록 고요한 미술관 내부에 존재하는 안락한 소음들. 예술품을 비롯한 관람객들, 경비원들을 통해 간과하고 지나갔던 것들을 돌아보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침내 깨닫게 된다.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라고. 이는 미술관에서 10년간 경비원으로 근무한 그가 관람객을 비롯한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했던 메시지이기도 하다.



by.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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