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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n 27. 2024

비:워내다

사랑에 대하여 5 : 마무리하며

  돌이켜보면 인생 전반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그래 이런 게 사랑이지,라고 감탄하는 것은 즐겼으나 스스로의 삶 안에서 그런 것을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만큼 추상적이고 멀고 낡고 닳아버린 단어도 없기 때문이었다.


 2023년은 나에게 좀 버거웠다. 벚꽃이 피던 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나는 친가든 외가든 조부모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흔히들 말하는 우리 똥강아지! 같은 애칭도 왠지 기억에 없다. 어려서부터 애교 못 떠는 성격에 무뚝뚝한 말투는 이십 대 중반이 다 되도록 여전해서, 스스로도 사랑받기 어려운 아이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늘 휘어지지 못하고 부러졌다. 바짓가랑이 붙잡고 앙탈 한 번 피우면 될 일도 백 가지 논리를 세우며 징그럽게 설득하고자 했다. 굳이 힘든 길로 돌아갔고, 돌아간 시간만큼 나는 멀어졌다. 외할머니를 화장하던 날, 무슨 의식이라도 되는 듯 모든 가족이 관 위에 엎어져 울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한 걸음 뒤로 빠져 있었다. 퉁퉁 부어서 엉망이 된 사촌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의아함을 숨길 수 없었던 언니의 눈동자가 아직도 생각난다. ‘너는 왜 안 울어?’라고 따져 묻는 듯한 눈. 돌이켜보면 모두가 대성통곡을 하는 그 현장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나도 조금은 울고 싶은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장례 마무리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된다고 해서 나는 곧장 차로 돌아가 전공 책을 펼쳤다. 중간고사 시험공부가 급했기 때문이었다. 암기가 생명인 과목이라 달달 외웠다. 잘 외워졌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목 놓아 슬퍼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위로를 건네지도 못했다. 어쩌다 백미러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텅 빈 표정이 마치 ‘너는 사랑을 모르는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나라는 사람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내 안에는 기본적으로 애정이라든가, 애교라든가, 그런 사랑 애자 들어가는 몽글몽글한 것들이 전무했고, 그것을 어디서 찾아 충당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내 평생 어떤 과제 같은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잘 만든 사랑 이야기를 보면 가슴이 설레었다. 형태소에서 사랑 프로젝트를 시작할 즘엔 내 안의 사랑과 일반적인 사랑, 그 간극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했으나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글’이었고, 뭐든지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내 뇌를 지배했던 것 같다. 제대로 된 지식이나 경험 없이 이런 글을 쓰려니 늘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비평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았을 때, 부원들은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는 식의 따스한 조언을 건넸지만 나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만큼 순하지는 못했다. 멋진 사람들의 멋진 글을 읽고 멋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고상한 사랑이 짜잔- 하고 완성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개뿔, 나는 어째 그때그때 급한 불을 끈 기억뿐이다. 내면의 이야기를 솔직히 풀어내고 전달하는 게 본 모임의 매력이건만,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는지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것을 들키기 싫었나 보다,라고 과거의 내 마음을 추측해 본다.


 여름이 지나고 9월에는 뭔가에 홀린 듯 학내 언론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의 글은 내가 알던 것들과 아주 달랐다. 기획의도부터 시작해 서론, 본론, 결론의 3단 구조가 딱 맞아떨어져야 했다. 일부러 늘여 쓴 문장은 최대한 짧게 쳐내고, 사실 관계를 해칠 법한 미사여구는 애초에 허용하지 않았다. 한 편의 글을 세 달 동안 다듬으며 논리를 세워 나갔다. 다소 기계처럼 삐걱대며 굴러가는 날들 중에도 나는 의외로 무너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제 아무리 딱딱한 기사 글일지라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저기 먼 나라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당장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수많은 사건이 돌고 돌아 거리를 좁혀오고, 결국 내 안까지 도달하는 것이었다.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사연과 사람과 삶! 그것을 글로 엮어내는 마음은 사랑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다소 갑작스럽게 사랑을 마주한다. 나의 사랑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곧은 시선으로, 내가 아닌 타인에게서, 안보다는 바깥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내 안의 사랑을 찾으려 애써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앞서 말한 일련의 것들은 모두 내 안의 무언가가 채워져 있었기에 가능했다. 형태소와 책을 통해 많은 세상을 만났고, 여러 사랑을 규정했다. 내 한 몸 건사하기 팍팍한 사회에서 문학이 주는 힘은 절대 작지 않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에는 책 속으로 기꺼이 도망칠 수 있었다. 부원들의 글을 읽으며 나와 맞닿아 있는 문장을 찾아 위로받고, 때론 감탄하고 때론 울컥하기도 했다. 그들이 남겨준 댓글은 문장마다, 어절마다, 그 모든 글자가 큰 위로였다. 되는 대로 지껄였던 말뭉치 같은 것들도, 누군가의 시선이 닿으면 다시금 살아난다는 것을 알았다. 글과 함께 나도 살아날 수 있었고 말이다. 텅 비어있던 마음도 넘칠 만큼 채워지고, 나는 그렇게 사랑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듯하다.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정의했던 미숙한 사랑은 여기 묻어두고, 이제 바깥의 사랑을 찾으러 떠나려 한다. 홀로 글을 쓰며 외로웠던 이십 대 초반의 슬픈 날들이 이곳에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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