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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n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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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 5 : 마무리하며

  형태소의 첫 프로젝트 ‘사랑에 대하여’가 마무리되었다. 10월부터 3월까지 계절이 세 차례 바뀌는 동안, 우리는 사랑을 읽고 각기 다른 사랑에 대해 써 보았다. 누군가는 사랑의 정의에서부터 고민해보기도 했고, 자신에게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또 나아가 어떤 태도로 사랑을 대할 것인지 다짐을 한 친구도 있었다. 사랑 프로젝트를 하는 기간 동안, 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일은 익숙했지만,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어려웠다. 정의 내려지지 않는 순간을 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사랑 1차시 『가슴 뛰는 소설』 中 「대니 드비토」을 읽고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한 쌍의 원령으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닿을 수 있을지 몰라도,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어도. 기꺼이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 이러한 마음이 사랑일 것이라고 글을 썼다. 황정은의 「대니 드비토」는 그리움에 본질을 둔 사랑 이야기였다. 원령이 된 유라는 떠나지 못한 채 유도의 곁을 맴돈다.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지만 유도는 유라를 잊은 채 살아갔고, 그럼에도 유라는 그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시간이 지나며 유도가 병들게 되자, 유라는 그를 바라보며 예상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자신이 유도를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생각하며, 길고 긴 외로움을 그가 겪지 않길 바라는 것이었다. 재회의 순간보다, 그가 말끔히 사라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가 겪었던 아픔을 겪지 않길 바라는 애틋한 사랑. 유라를 보며 변하지 않는 사랑의 속성이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사랑 2차시 -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고

그러니까 시는
시여 네가 좋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는
돌들의 동그란 무릎,
죽어가는 사람 옆에 고요히 모여 앉은


 진은영의 시를 읽을 수 있어서 기뻤다. 2차시가 가장 와닿았는데, 「밝은 밤」이라는 같은 소설을 읽어도 각기 다른 사랑을 찾아냈던 형태소 친구들의 글이 너무나도 좋았고 진은영의 시를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요?라는 물음에 "질문하는 사람. 지금 굴러가는 정상성이 정말 맞는 건지,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 이길보라 감독의 인터뷰를 좋아한다. 진은영 역시 질문하는 태도로 사랑을 이야기했다. 시 구절을 외울 순 없어도, 시인으로서 어떻게 시를 써야 하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시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던 진은영의 마음은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시를 써 내려간다. 우리가 세상을 견디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가? 에 대한 물음에 진은영의 답은 ‘사랑’이었다. 고통받는 존재들에게 시로써 사랑을 전해 갔다.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3차시

 한 달 정도 해외를 다녀오게 되어, 3차시 프로젝트에는 참여를 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두 차례 정도 형태소를 떠올린 순간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실패할지언정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행위의 문학적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다.


꽉꽉 채운 캐리어에 세 권의 책을 챙겨 갔었다. 가져간 책들은 도피처가 되어주기도 하고, 읽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곽아람 작가의 「쓰는 직업」에서 읽은 구절이다. 실패할지언정 끊임없이 시도하는 행위의 문학적 아름다움. 형태소와 함께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들에서 마주했던 감정 같다고 느꼈다. 글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담아내는 글을 쓰던 시간들.


a cycle of loss and hope


휘트니 뮤지엄을 둘러보던 중, 한 작품 설명에서 보게 된 문장이었다. 이것이 미술관 전체를 그리고 우리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문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과 희망의 순환 아래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 그 사이에 사랑이 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랑이 이것이라고 느꼈다.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사랑. 형태소와 함께 읽고 썼기에 답을 찾아갈 수 있었다. 사랑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인지하진 못했지만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채우는 것들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사랑 4차시 - 「나는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이런 전시실에서는 천 번을 둘러봐도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동안 내가 이 벽 너머의 세상을 얼마나 조금밖에 보지 못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형의 죽음 이후, 경비원 근무를 택한 브링리는 미술관에서의 경험을 통해 상실을 희망으로 채워나갔다. 사랑에 방점을 찍고 읽어 내려갔기 때문일까. 이 책은 미술관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예술이 주는 위안을 통해 사랑을 되찾은 이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으로 형태소의 사랑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어 기뻤다. 애틋한 그리움에 관한 책으로 시작해 상실을 사랑으로 채워낸 이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우리의 소모임에 형태소라는 이름을 붙이던 순간을 기억한다. 의미를 갖춘 가장 작은 단위를 의미하는 형태소, 다양한 형태의 글들을 써 내려갈 이들. 프로젝트는 끝이 났지만, 나는 여전히 슬플 애와 사랑 애 사이에서 머물러 있을 것이다. 살아가게 만드는 사랑에 대해 고민하며 더 많이 읽고 더 부지런히 쓰도록 하겠다.



by.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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