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미안.
최근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왔다.
가까운 속초나 양양에서 일출을 보려다가 따뜻한 남쪽을 가고 싶다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여행지를 경주로 정했다. 부산은 좀 더 머니까.
좋아, 경주. 경주야, 오랜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경주로 향했다.
출발 전에는 '3시간 30분 정도면 가깝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도로 위에 올라가니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유치원, 초등 저학년인 아이들에게는 더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중간 중간 더 많이 쉬다보니 일찍 출발 했음에도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경주는 도시 입구부터 '저는 특별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왔던 15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도로 주변으로 '미소 기와', '천마', '첨성대' 등 대표 문화재들이 가로등 다리, 현수막, 다리 장식 등으로 변신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이런 친절한 환대에 기분이 좋았다. 남편 역시 한적한 도로와 기와로 된 집들에 호감을 보였다. 날씨도 봄처럼 따뜻했다. 칼바람에 눈물 흘리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하기 싫었던 위쪽 동네들과는 달랐다. 아이들도 우리와 같이 설레했었다. '역시 경주로 정하길 잘했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단한 감정이탈자가 생길 줄도 모르고.
둘째아이는 천마총,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등 가는 곳마다 관심을 가지고 함께 했다. 반면 첫째는 가는 곳마다 재미없다, 지루하다, 언제 가냐, 빨리 가자를 연발했다.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너는 공식적으로 학교에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왔으니 수업 받는 것이랑 똑같은거다. 그러니 참아라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렇다고 관심 없는 것들에 관심이 생기지는 않을 걸 알면서.
첫째의 불평, 불만은 마지막날 경주박물관에서 절정을 이뤘다. 그래 석굴암, 불국사에는 관심이 없을 수 있지, 힘들 수 있지. 금관, 금허리띠 등 유물은 괜찮을거야. 여기는 좀 낫겠지 했는데 아뿔사 여기가 제일 아닌가보다. 빨리 가자는 보챔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고, 덕분에 나머지 식구들도 제대로 뭣 하나 감상하기가 힘들었다. 이것 좀 봐라, 저것은 어떠냐 물어보면 이미 다 봤다. 그러니 얼른 다음으로 이동하자는 이야기만 돌아왔다. 반면 둘째는 재미있게 구경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도 둘째는,
"엄마, 여행 너무 재밌어요. 또 오고 싶어요."
라고 해서 엄마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옆에 서 있던 첫째는...
둘째한테 시비 걸어 안싸우면 다행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으로 기념품가게에서 몇 가지를 골라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빨래며, 짐정리를 시작했다. 바로 하지 않으면 몇 날 며칠 쌓아놓을 것이 분명하니까.
나머지 식구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편안히 보냈다. 조용해서 살펴보니 둘째는 만화를 보고, 첫째는 박물관에서 사온 만들기 조립을 하고 있었다.
'아, 맞아. 우리 첫째는 저런 걸 좋아하지.'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혼자 금관, 청성대, 황룡사 9층 목탑 입체 종이 공예를 집중해서 하는 것을 보고 떠올랐다. 밖에 나가자고 하면 나는 집에서 노는 게 더 좋다고 하는 아이. 집에서 무언가 만들고 조립하고 하는 걸 즐기는 아이.
첫째랑 다르게 둘째는 나가는 것을 좋아하고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을 즐거워한다. 그러니 여행에서 적극적이고 행복했을 수 밖에. 둘의 성향이 전혀 다르고 다만 여행에는 둘째가 더 맞았을 뿐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맞지 않는 장소에 데려다놓고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못된다고 아이를 다그친 엄마는 뒤늦게 미안함이 몰려왔다. 여행 내내 첫째를 향해 너는 동생은 저렇게 잘 관람하고 재미있어하는데 큰 아이가 되어서 이렇게 밖에 못하니라고 차마 말을 안했지만... 이런 메세지의 눈빛을 아이가 모르겠지 생각하면서 무수히 보냈던 것 같다. 첫째가 가자고 해서 온 여행도 아닌데.
남편이 경주로 여행를 정했을 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첫째에게 역사 공부를 시켜야겠다라는 포부가 작동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가 제대로 보지 않고 설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을 때 스물스물 화가 올라왔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엄마 욕심에... 험한 꼴 당한 것 같다.
입체 종이퍼즐 조각을 떼어내고 남은 틀을 버리려고 하니, 그걸로 무언가 만들거라고 절대 버리지 말라는 아이를 보며 다음 여행은 나의 욕심을 줄이고 아이를 배려하는 여행을 해야겠다 다짐해본다. 첫째야,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