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어린시절 어린 내 눈에 비친 아빠는 한없이 친절하고 젠틀하고 여유있는 한 마디로 저 아빠가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사람' 이었다.
'흥, 봐. 우리 아빠 멋있지? 부럽지?'
가끔 친구들이랑 있으면 속으로 우쭐대기도 했다.
그런데 성냥팔이소녀의 꿈이 성냥이 꺼지면 사라지듯 '그런 아빠'가 집에만 들어오면 사라지고 없었다. 아빠는 본인 컨디션이 좋을 때만 다정한 사람이었다. 집에서는. 물론 그 시절 아빠들 중에는 남들에게 막하고 가족들에게는 더 막하는 분들도 많았던 걸 감안할 때 아빠가 특별히 나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남들에게는 그렇게 잘하면서 왜 가족인 우리한테는 왜 그렇게 밖에 못하는건지 궁금하고 속상했다.
나이가 들어서야 아빠는 밖에서의 인정과 평판이 가장 중요했구나 하고 이해하고자 할 뿐이다. 남들에게 인정 받는 것에 목말라 있었구나.
아빠는 자신이 직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줄 아느냐, 그래서 힘들다. 이렇게 힘든 일을 다 참아내는 사람이 세상에 흔한 줄 아느냐. 그러니 이런 나를 칭찬해주고 대접해줘라라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자주 했다. 가족들이 아빠가 지켜주고 보호해줘야할 대상이 아니라 아빠의 편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집에서 무조건 쉬고 편안해야 하는데 가족들 문제로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끔찍히 싫어했다.
아빠 인생의 우선 순위는 일, 타인, 그리고 끄트머리에 가족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크게 인정 받을 필요 없는 가족들이 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사회적 성공에 함몰되어 있다보니 가족들에게 쏟을 에너지도 사랑도 없었다.
아이들이 잘하면 자신이 사회에서 받는 인정을 더욱 공고히 할 하나의 수단이요, 아이들이 남들의 눈밖에 날만한 행동은 자신의 평판을 깎아먹는 일이기에 절대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공부 잘하라는 이야기. 다른 집 누구처럼 남들이 놀랄 만큼 잘 해봐라.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망신 당하지 않게 잘해라. 이런 이야기 밖에 못하지.
아빠는 가족들에게 인색했고 그런 아빠 밑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인색했다. 항상 높은 목표, 아빠 기대에 충족할 수 있는 높은. 그런 것들을 세워놓고 왜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냐고. 왜 이것 밖에 못했냐고 몰아부치고 비난하고 더 잘하라고 채찍질했다. 나 자신과 이런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실패했을 때 따뜻하게 안아주고 격려해주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다독였어야 했는데 넌 왜 그것 밖에 못한거냐고 질책하고 넌 실패했다고 넌 이제 끝이라고 막말했다. 그래서 어린 내 가슴에는 수없이 많은 구멍을 뚫었다.
내 부모가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나라도 내 자신에게 따뜻하고 친절했어야 했는데 나 역시도 부모와 똑같이 나 자신을 대했다.
이걸 이렇게나 어른이 된 뒤에 알게 되다니.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갑작스럽게 준비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9시가 가 되어가는 시간에 큰 마트를 다 돌고, 대형 쇼핑몰 완구점에도 전화하고, 동네 작은 문구점까지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 어느 곳에서도 제품을 구할 수가 없었다.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 어두컴컴해져 나가기 싫은 때에도 아이를 위해서 밖으로 나왔는데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들어가게 생겼다. 마지막으로 편의점에 혹시 아이가 말한 물건이 있을까 해서 들렀다. 물론 없었다. 이제 오늘은 어쩔 수 없다. 내일 다시 찾아보자.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내 눈은 음료냉장고 안에 있는 맥주에 꽂혔다. 맥주는 일반 마트에서보다 훨씬 비쌌다.
'아이 것도 못샀는데 무슨 내 맥주를 사?' 하고 편의점을 나왔다가 불현듯 '내가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다 왔는데 나는 나에게 칭찬을 안해주네. 힘들었다고 인정을 안해주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편의점으로 다시 들어가 맥주 한 캔을 집었다. 마트보다 천 원 비싸서 내려놓았던 그 맥주를.
오늘 내 수고가 천 원 어치는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동안 나는 이런 삶을 계속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나에게 인색하고 불친절한.
지금부터라도 나를 아끼고 보듬어주자. 나에게 조금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보자.
인기 유명 강사가 한 말처럼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이 되어보자.
BTS도 말했지 않았는가.
'Love yourself!' 하라고.
이제부터라도 제발 '러브 유어 셀프'를 실천해보자.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