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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May 27. 2023

'부처님 오신 날' 연등은 왜 달까?

종교 단상


'부처님 오신 날' 알록달록 연등은 왜 달까?


오늘은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석가탄신일(1975년 제정)'이었는데 2018년 '부처님오신날'로 바꾸었다. 법정공휴일이다.


'부처님오신날' 즈음해서 큰절이 있는 거리마다, 마을 들머리마다, 산길마다  빛깔 고운 꽃이 핀 것처럼 알록달록 고운 빛깔의 연등이 매달려있다.

'부처님오신날', 연등은 왜 켜는 걸까?


2600년 전 그 옛날은 그 어느 나라도 전기는 없었을 것이고, 인도는 더운 기후의 나라인지라 햇볕이 뜨거운 낮이 아닌 해가 진 뒤 잔치(행사)를 하는 나라였다. 

고따마 붓다(부처님)도 밤에 설법(設法)을 하곤 했고, 어느 때 어느 도시로 초청을 받아 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설법 장소와 그곳으로 가는 길에 등을 켬으로써 붓다를 반기는 한편 밤의 어둠을 밝혔다.


구걸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난타 할머니도 그 소식을 들었고, 샤카족의 성자 고따마 붓다로부터 설법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먹을 것 대신 등불 심지를 태울 기름 살 돈을 구걸하였다.

하루 종일 구걸한 몇 푼을 들고 기름을 사러 갔는데 돈이 너무 적어 주인이 물었다. 뭘 하려고 기름을 사는 것인지를. 난타 할머니는 '붓다가 이 마을에 오신다 하여 나도 등불을 히고 싶어서 그런다'라고 하자 딱하게 여긴 기름집주인은 곱절로 얹어서 기름을 주었단다.

난타 할머니는 화려하지도 않고 보잘것없는 등이지만 하루를 살 수 있는 밥과 바꾼 기름으로 불을 밝힌 다른 이들의 화려한 등이 많이 켜진  말고 구석진 어두운 곳에 등을 걸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등불은 하나둘 꺼져갔고, 설법이 끝난 새벽에는 등불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붓다의 제자들은 등불을 끄기 시작했다. 난타 할머니의 등을 끄는데, 진즉 꺼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등이 아직 켜져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아무리 끄려고 해도 꺼지질 않더라는...,

우리나라불교에서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고 한다.



신기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는 상징일 뿐, 등불을 켠다는 행위 안에 깃들어 있는 참뜻은, 보이지 않는 곳 어둠을 밝힌다는 데에 있다. 밝은 등불을 켬으로써 내 안의 어두움 탐진치를 걷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등을 켠다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행복을 방해하는 요인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버릇을 하나만이라도 없애려고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등불이 필요한 곳은 햇볕이 잘 드는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두운 곳이다. 구석진 어두컴컴한 곳 생명의 기운이 없는 곳이다. 사회로 보면 소외된 곳, 취약계층일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오신날' 연등을 켜는 일 빛이 없는 어두운 곳,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불교는 (코로나 때 빼고) 해마다 서울을 비롯한 각 도시마다 연등회(燃燈會) 잔치를 한다. 연꽃 등(蓮燈)이 아니라 사루는 등(燃燈)이다. 종단마다 사찰마다 행진 때 쓸 연등을 만드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더 화려해지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20년에는 'Buddhist Lantern Festival'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무형문화재와 세계문화유산이라 화려함에 더 신경 쓰는 걸까!) 


'부처님오신날' 즈음의 전국의 사암(寺庵)에서는 한참 전부터 바쁘다. 연등을 만드느라 바쁘고 내 거느라 바쁘다. 붓다를 초청하여 설법을 듣던 그때처럼 어두운 길, 어두운 곳을 밝히려는 마음이라면 더없이 좋을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자본주의 잣대로 돌아간다. 절에서도 모든 게 돈으로 값이 매겨지고 연등 또한 마찬가지다. 부처님 오신 날 즈음 등을 팔아(?) 생기는 돈은 절 살림의 큰 밑천이 되기에 크기와 위치에 따라 값이 따라 다르고 그걸 당연히 여기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 바람이 인다.

가난한 난타 할머니처럼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는 정성은 아닐지라도, '가족건강 사업번창 재물복덕 시험합격 안전운전 무사고를 비는 개인의 소원(所願)이 아닌, 붓다의 가르침을 새기며 가정과 세상이 더 밝고 평화롭도록 이렇게 살겠다는 서원(誓願)을 스스로 정하여 실천하면 좋겠다는.

전국 수많은 절의 스님들 또한 소원을 빌게 하는 게 아닌 서원을 정하고 지니고 지키도록 이끌어주면 좋겠다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신 모습을 떠올리고, 일깨워주신 말씀을 새기며, 흉내 내고 닮아가는 것이 붓다의 뜻을 기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부처님오신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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