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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Jun 16. 2023

똥은 금 오줌은 비

병상 일기 - 3

똥은 금 오줌은 비


옆 침상에는 먼저 입원한 환자가 있었다.

그미는, 직장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뒤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왔고, 입원해서도 며칠 동안 혼자 옷을 입는 것도 안 되고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기력이 바닥이었다고 했다.

2인실이지만 내가 가기 전까지는 혼자여서 아들이 수발을 들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내가 입원하던 날부터 화장실은 혼자 갈 수 있게 되었다며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자분자분 말을 걸어왔다.




그미는 요양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죽은 듯 누워있는 노인의 목에 구멍 뚫어 관을 넣고, 끼니마다 이유식 같은 음식물을 관으로 넣어 숨을 잇고 있는 노인들을 보니 눈물이 나고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대신 집으로 찾아가는 일을 했다면서, 치매 걸린 할머니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준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는 할머니는 일상의 일들과 일상에서 쓰는 말은 다 잊어버리고 몇 가지 두드러진 행동과 표현만 하셨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자신이 싼 똥을 금이라고 여기며 둥글게 또는 네모지게 또는 가래떡 모양으로 빚어서 손수건이나 종이에 곱게 싸서 장롱 서랍이나 수납장에 넣어 뒀다가 마음에 드는 요양 보호사를 보면 꺼내 준다는 것이다. 

만약 싫어하는 표정을 조금이라도 지으면 다음에는 절대로 안 주고 어느 구석에 더 깊숙이 꽁꽁 숨겨 놓는단다.


할머니는 마음에 드는 요양 보호사 그미가 보이면 은밀하게 손을 잡아끌고 방으로 들어가 행여 누가 볼까 몰래 수건에 곱게 싼 똥을 주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셨는데 그미가,

"아유, 이 귀한 걸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하면,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쉿!' 하는 시늉을 한 뒤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라고 소곤거리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얼른 받아 가지고 나와 변기에 버리곤 했단다.


그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를 제일 무서워하셨는데, 어둑한 방에만 계시는 게 안타까워 환한 거실로 나오시라고 하면, 아들 며느리가 없으면 나오고 만약 아들 며느리가 있으면  "혼나."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시곤 하셨단다.


그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의 전생(지난 젊은 시절 삶)이 짐작되었고, 아들의 내생(미래)도 그려졌다.




또 다른 할머니의 이야기도 해줬다.

할머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훅! 똥 냄새와 지린내가 달려 나오는가만히 보니 이불이 흠뻑 젖어 있더란다.


"할머니, 이불이 많이 젖었네요?"


"응, 비가 많~이 와서 다 젖었어."


"아~~, 비가 많이 와서요?"


"응, 오늘은 비가 많이 왔어~"


그 뒤로는 집에 들어가면서 먼저,

"할머니, 오늘은 비가 많이 왔어요, 조금 왔어요? 어땠어요?"


"응, 오늘은 쪼금 왔어."


둘 만의 암호처럼 '많이 왔다' 하면 오줌을 많이 누어 이불이 많이 젖었다는 뜻이고, '조금 왔다'라고 하면 조금만 누신 거고, 이불이 조금 젖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단다.




그미가 만난 할머니들, 배고파도 참고 서운해도 참고 아프고 힘들어도 참고, 배고파도 아끼고 아프고 힘들어도 아끼면서 열심히만 살았을 것이다.

그 시절엔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될 때였기에 밤낮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하는 한편 모든 걸 귀하게 여기던 시절이었으니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무시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으면서 어떻게든 자식은 부모처럼 안 살게 하려고 참고 또 참으면서 악착같이 살았을 것이다.

늘그막에 자식들은 제 앞가림하고 살만해졌다 싶은데 세상은 바뀌었고 몸은 늙었고 정신은 흐려졌을 것이다.


아들 며느리를 무서워하셨다던 할머니, 이불에 오줌을 누셨다는 할머니들.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 갇힌 것도 모자라 헛 것을 보고 헛소리까지 들으면서 무서워하셨다는데 이제는 무서움에서 벗어나고 편해지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 몸은 늙어 아프고 내 마음대로 안 되어도 정신은 맑은 상태로 지낸다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그 복은 보이지 않는 어느 존재가 던져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짓고 받는 일이라는 걸!


그미의 이야기는, '과거 어느 한순간에 집착하지 말고 오늘 지금을 여유롭고 너그럽게 잘 살라'회초리 같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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