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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Oct 27. 2023

보기만 해도 좋을 가을날인데...!

오늘 일기

보기만 해도 좋을 가을날인데...!


산빛 가을빛이 고와질수록

사람들의 행렬도 울긋불긋입니다.

어떤 이는 가을날 집에만 가만히 있는 건 억울한 일이라고 합니다.


지난날엔 가을이 오면 잿빛 도심에서 맡을 수 없는 가을내음, 나무 타는 냄새가 몹시 그리워 아프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볼 때는 보아서 좋고

안 볼 땐 안 보이는 대로 좋습니다.


이럴 땐 이래서 좋고 저럴 땐 저래서 좋은 날들, 함께 있을 땐 함께 있어서 좋고 없을 땐 없는 대로 좋은 날들입니다.


가을이라 좋은 건, 단풍 구경하러 길을 나선 이들이 서두르거나 짜증 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으며 웃음꽃까지 피우는 여유로움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곱게 물들고 있는 나뭇잎들이 아마도 사람들 마음까지 곱게 물들여 주는가 봅니다.


산길 들길이 울긋불긋 알록달록

고운빛 물드는 가을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보다 낮은 데서 올려다보는 게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건

찬란한 하늘빛이 거든 덕분이겠지요?


도심 한가운데는 하늘에 닿겠다는

바벨탑처럼 욕망의 높이만큼 높은 건물들이 하늘빛을 가린 지 오래됐지만, 산 들 숲 개울 울퉁불퉁 구불구불한 곳엔 하늘빛이 무시로 드나드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아름다움을 더 누려도 될 고운 꽃 나뭇잎을

무참히 떨구어 버리니 아프고 슬픕니다.

바람이 달려와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을 흔들어대더니 천둥으로 겁을 주고 찬비로 뺨을 칩니다.

나뭇잎들이 무참히 바닥에 내동댕이 쳐집니다.


먼 산등성이 가까운 능선에 나뭇잎들 떨구고  먹물 잿빛 줄기와 가지만 앙상히 남을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는 이 가을은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시 또 가을은 왔지만 전처럼 좋다고만은 못하겠습니다.


다 피지도 못한 꽃들이 다 물들지 못한 나뭇잎들이 무참히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떨어질 때 그 누구도 아는 척 않고 봐주지 않았는데 모질게 떨궈서 미안하다조차 하질 않습니다.

나의 나뭇잎 당신의 꽃잎 우리의 가을이 무참히 짓밟힌 채 아직 길바닥에 채여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가을 다울 수 없게 한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습니다.

보기만 해도 좋을 가을날이건만...,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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