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전국 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시인의 말대로 앉아서 나의 책을 사는 팬을 만나는 복을 누리고 있는 셈이었다.
마흔 권 남짓의 책들, 소설, 시, 산문, 에세이, 동시, 디카시 가운데 내가 쓴 책을 고르고, 작가가 그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사인을 해달라'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 모든 일들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건 분명 낯선 일이고 흔히 없는 일이며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날마다 복을 누릴 복은 없었는지 이레 째 되는 물날(수요일)은 유치원에서 온 단체 체험 손님 말고는 하루 종일 사람이 없어서 일찌감치 문(?)을 닫아야 했고, 비까지 오락가락하는 데다 후덥지근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돌아다니 걸 포기했는지 메밀꽃밭 안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날(목요일) 또한 평일인 데다 후덥지근 해서인지 여유롭게 다니는 이들이 거의 없다.
다른 곳은 어떨까!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기에 한 바퀴 둘러보기로 한다. 먼저 다리 아래쪽으로 갔다. 예년에는 주차장으로 쓰던 곳인데 올해는 커다란 짚썰매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앞으로는 음료수와 곁들여 먹을거리를 파는 곳으로 꾸며놓았는데 마찬가지로 오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다리 건너 주무대가 있는 쪽으로 갔다. 돔으로 돼있는 무대 지붕 아래는 예년과 다르게 책꽂이로 둘러 무대 배경이 돼 주고 있었다
밴드가 공연 중인 그 앞은 예년과 같게 관객들이 앉을 수 있는 행사용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일거양득이다 싶게 더위를 피해 앉아있는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있었다.
그 뒤로는 봉평청년회에서 떡메를 쳐서 만든 인절미와 식혜 따위의 음료를 팔고 있고, 그 양옆으로 음식 파는 곳들도 있으나 한낮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별로 없다.
봉평장터로 들어가는 길을 건너면 예전에는 봉평중고등학교였지만 지금은 전통장 주차장이나 문화제 기간 동안은 체험 부스들이 빙 둘러 들어서 있다. 마침 지인도 그중 한 곳에 있다고 하기에 빙 둘러본다. 차를 세우던 곳곳마다 부스가 들어서 있으나 동선(動線)이 영 불편하다.
앞 줄의 부스에서 두 번째 부스로 가려면 앞 줄 부스를 등지고 돌게 되어 있다. 체험객들이 입구에서 출구까지 쭈욱 이어서 돌 수 있도록 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할 즈음 지인이 있는 부스를 찾았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손님이 한 명도 없다. 지인이 있는 곳은 하수구 냄새까지 올라왔고, 선풍기로 냄새와 더위를 날리던 지인은 수익은 포기했다며 큰 짐은 이미 싸서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부스비가 70만 원인데 그 비용도 나올 것 같지 않다며 그저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있다고 한다.
봉평장터 안은 어떨까!
동창이 하는 메밀부침가게로 가는 장거리에 오일장 날 보던 장꾼들이 있다. 땅콩과 밤을 볶아(?) 파는, 모시 송편을 파는, 골동품을 파는, 재배 송이를 파는 장꾼들은 문화제 기간에도 나오는 건지 아니면 장날이라서 나온 건지 물어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장꾼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으니 북적북적한 게 축제 분위기가 난다.
장날 때면 단골들이 있는 데다 맛집으로 알려진 동창네 부침가게 또한 휑~하다.
터줏대감 격의 상인들은 어떠냐고 물어보니 주최 측에 불만이 많다며 내년에도 (문화제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나에게 이익이 있으면 '잘 한다 좋다' 하고 이익이 없으면 '잘 못한다 망했다'는 식인가 보다.
거의 모두가 나의 이익만 따지지 봉평의 미래나 모두의 이로움은 생각지 않는 듯하다.
그러니 20년 전 10년 전엔 메밀꽃밭이었던 곳이 사라지고 가게나 빌라가 들어서는 것이리라.
더더군다나 이틀 (그나마 다행히도 밤에만) 내리 폭포처럼 쏟아붓는 비 때문에 메밀꽃밭은 쑥대밭이 되었고 군데군데 웅덩이까지 생겼다.
비가 개어 돌아다니던 사람들 가운데는 애꿎은 매표소 알바들에게 "메밀꽃은 다 쓰러져있고 볼품없는 풀만 있는데 뭘 보라고 입장료를 받느냐?"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앞의 포토존에도 물이 찰방거려 들어갈 수 없고 메밀꽃들은 군데군데 드러누워버렸다.
풀이 많다며 항의하는 이에게 매표소에 있는 나이 지긋한 분이 "메밀밭은 풀을 뽑을 수 없어요. 풀을 뽑으면 메밀까지 뽑히거든요."라고 경험에서 나온 말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따지는데 이렇게 드러누운 꽃들을 보면 더더욱 항의하겠다 싶다. 나는 이곳이 고향이면서 이곳에서 계속 살 사람으로서 우리 고장을 찾아준 손님들이 서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태프 목걸이(?)에 있는 비상연락망을 보고 주최 측에 입장료를 반만 받으면 좋겠다고 건의를 해본다. 돌아온 답은 '안 된다'였다.
우리 작가들도 더 이상의 어떤 기대와 바람 없이 그저 '손님 대접 잘하자'는 마음으로 나머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지친 사람들은 쉬어갈 수 있게,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와서 서로 찍어주기만 하고 함께 찍지 못하면 사진도 찍어주며.
그러다 보니 우리들만의 사연도 생긴다.
우리 집에 오신 손님처럼
하얀 티셔츠를 단체복으로 입고 나타난 가족들이 꽃밭을 배경으로 같은 폼새로 사진을 찍으며 하하 호호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등에 쓴 글귀가 더 재밌다. 00이 첫째 딸, 00이 첫째 사위, 00이 둘째 딸, 00이 둘째 사위, 00이 손녀딸..., 이런 식이다.
그 모양을 본 손나발을 한 디카시인이 "둘째 사위님~~ 멋있어요~~" 우리가 있는 곳과 먼 꽃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가족을 향해 외친다. 얼핏 보면 아는 사람을 부르는 것 같다.
그 가족들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아이를 중심으로 체험 탁자로 간 엄마 아빠 할머니를 뺀 나머지 가족은 남은 의자에 앉거나 서있거나 하는데 내가 차를 내주면서 말을 걸었다.
"여기 디카 시인도 둘째 사위래요. 그래서 둘째 사위라는 글귀를 보자마자 동질감을 느꼈나 봐요."
디카시인은 그들이 책을 사지 않았는데도 가족사진을 찍어 주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갈피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또 끼어들었다.
"정말 아름다웠나 보네요. 이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갈피인데' 본디는 디카시집을 사야 해주는 거든요."
사위들은 책을 사야 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디카시인은 책을 안 사도 된다. 정말 보기 좋아서 선물드리고 싶었다고 손사래를 쳤고 나는 한 번 더 말을 덧붙였다.
"정말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저도 정말 아름다워 보였고 보기 좋았어요."
그들은 즉석 사진으로 만든 책갈피를 받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디카시집을 샀고 사인도 받았다.
또 기억에 남는 일은 샌들 끈을 만들어준 일이다.
관광버스로 친구들과 여행 온 여인들이 메밀꽃밭을 돌다가 우리 부스 앞을 지나는데 샌들끈이 끊어져 난감해하는데 체험 안내를 하던 미연 氏가 노끈을 가지고 샌들끈을 만들어 주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샌들끈을 만들어 주는 모습은 자못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여인은 무척이나 고마워하며 떠났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다시 난감해하는 걸 디카시인이 보고는 스티커를 챙겨가지고 가서는 다시 묶어주고 스티커를 붙여주자 여인은. "책도 한 권 안 샀는데 왜 이렇게 친절하게 해 주세요?" 하여 디카시인은 "우리 고향을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즐거운 여행되세요~~"
차를 마시던 이들 가운데는 울산에서 태화문학 활동과 함께 글을 쓰는 분도 있었는데 책을 보내주겠다 하시더니 정말로 한 상자를 보내왔고, 종교는 기독교지만 읽고 싶다며 <사람으로 왔는데 중생으로 갈 수는 없잖아>를 사가기도 하였고, (사인을 하기 위해 적어달라는) 이름과 함께 응원의 글도 써주어 감동을 받기도 했다.
그림자가 따르듯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열흘 동안 이 작은 동네에 몇 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사람이 모이고 움직이는 일은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쓰레기가 산더미나 날마다 바로 수거해 가는 분들 덕분으로 눈살 찌푸릴 일은 없었다.
날씨가 9월답지 않고 한여름처럼 더울 때면 지나다니는 사람들 거의가 얼음 음료를 들고 다녔다.
우리 부스도 쓰레기가 제법 나왔다. 우리 또한 가까운 카페에서 얼음이 든 커피와 음료를 사 오곤 했고 일부러 응원차 들러주는 작가들의 지인들도 얼음이 든 음료를 사 오곤 하는 데다, 평소엔 종이 상자와 물병이 기본으로 나왔고 두 번의 주말엔 김밥과 사발면 (컵라면) 껍데기가 더해졌다. 재활용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잘 분리해 모아두었다가 사흘 만에 길가에 내놓았는데 다음날 보니 없어졌다. 알고 보니 바로바로 처리해 가도록 담당하는 분들이 계셨던 거다.
하긴 문화제가 끝나면 사람들로 북적이던 길은 휑하고 군데군데 쓰레기 자루만 남아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쓰레기는 사람들의 흔적이다. 마치 사람이라면 그림자가 따르듯이.
봉평의 효석문화제가 끝났다. 그 기간 동안 마치 우리 집에 오신 손님 대하듯, 손님치레하는 마음으로 후회 없이 보냈다.
하지만 손님들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는 순전히 '손님은 왕이다'라고 인식하게 만든 스위스 출신의 호텔 경영자 세자르 리츠(César Ritz) 때문이리라.
세자르 리츠의 호텔 운영 정신은 다른 호텔 운영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뿐만이 아니라 일반 자영업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작은 동네 중국음식점에도 손님은 왕이다라는 인식이 보편이다.
물론 세자르 리츠는 돈을 내는 손님은 왕을 대하듯 했고 왕의 의전을 맡은 사람, 곧 호텔 직원 또한 귀족처럼 행동하게 했으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되는 것만을 선택해서 쓰는 특성이 있기에 돈만 내면 못된 왕처럼 군림하려 든다는 것이다.
못된 왕은 권위만 누리려 하지 왕의 품격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마니까 말이다.
문화제 이야기하다 말고 무슨 왕의 품격을 논한단 말인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말하자면, 메밀꽃 필 무렵에 문화제를 주최하는 사람들은 주인이고 메밀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손님일 것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우리 집은 메밀농사를 짓는데 꽃이 필 때면 너무 예뻐서 혼자 보기 아까워요. 그래서 특별한 잔치를 열었어요. 아름답고 멋진 사진도 찍고 동네 구경도 해보세요. 꽃구경은 공짜지만 동네 구경하실 때는 돈 좀 쓰셔야 해요~~ 좋은 추억 남기시라고 돈 좀 들였거든요."
라는 생각으로 전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광고를 했다. 그러면 손님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정성스러워야 한다.
또한 마찬가지로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도 손님(왕)의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인은 손님들을 돈으로 본다. 손님 또한 와서 보니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들지 않는 것도 있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생각이 발동한다.
"시간 내고 차비까지 들여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이따위 밖에 안 돼?" 또는 꽃밭에 마구 들어가거나 쓰레기도 아무 데나 버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낸 비용에 다 포함돼 있는 거야."라는 식으로.
어쨌거나 그날그날 순간순간 정성을 다했다는 생각이고 후회 없다. 그러나 상대방은 나와 전혀 다르게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우리가 인연 했던 그날 그 시간은 그저 스친 인연이었을 테고, 저마다의 삶 가운데 한 점도 안 되는 찰나였겠지만 그 한 점이 모여 인생이 될 터이니 이왕이면 행복하고 좋은 점이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