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설펐던 첫날에 이어 휘몰아쳤던 둘째 날이 지나면서 하루하루 환경 조건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아침에 책을 펼치고 저녁에 책을 걷는 속도도 빨라졌고, 수익에 연연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오가는 사람 없으면 체험 꾸러미를 풀어놓고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또는 사진을 찍거나 짧은 글을 쓰며 지루한 순간이 없도록 했으며 그도 아니면 빠른 노래나 음악을 틀어놓고 흥을 돋우면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늘만 잘 살고 보자'는 듯 순간순간을 '하하 호호' 즐겁게 보내고 있긴 했는데...,
처음엔 휑하던 나무가 나중에는 가득 차고 있었다.
사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흘 잔치에 동참하기로 결정하고는, '무엇으로 어떻게' 전국에서 오는 손님들의 눈길 발길을 끌을지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생각을 쥐어짜 내야 했다.
글의 장르가 다르듯 성격이나 삶의 방식도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나 마찬가지인 책을 보따리장수 물건 팔 듯 저잣거리에 내놓고 팔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평창에도 글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리자는 '오직 한 뜻'으로 만나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해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모두가 만날 수 있는 날짜를 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코' 만나 좋을 만한 이런저런 생각을 내놓는 가운데 썩 괜찮다 싶은 생각들을 골랐다.
돈을 내고 하는 체험 거리로는 작가들의 글에서 추리고 뽑아낸 글귀 따라 써보기(필사)와 접는 부채 또는 투명 부채에 그림 그리기를 골랐고, 공부방 교사 경력이 있는 행복한 책 읽기 회장과 동시와 시를 쓰는 시인이 맡기로 했고, 각자 맡은 요일에 맞춰 체험거리도 각자 알아서 준비하기로 했다.
같은 요일을 맡은 디카시 작가는 자신의 책을 사는 사람에게 즉석사진을 찍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갈피를 만들어 주겠다'하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게 떠오르질 않아 '차 한 잔'을 대접하기로 하는 한편,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 들뜨는 마음, 속상한 마음 따위를 내려놓기'를 무료 체험(?)거리로 생각했다.
한 조각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게 할 것인가!
먼저, 인연 있는 평창시네마 관장께 전화를 걸어 'GV 때 소원 트리로 썼던 나무를 빌려주십사' 했다. 흔쾌히 '빌려주겠다'는 대답을 들은 뒤부터 갖가지 빛깔의 두꺼운 종이를 별모양과 하트모양으로 오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최소한 '30명 정도는 쓰겠지'라는 생각으로, 엄지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몇 날 며칠 몇십 장씩 수백 장을 준비했다.
우리는 문화제 전 날 다시 한번 만났다.
세 개의 부스를 어떤 식으로 어떻게 쓸지를, 그러니까 책은 어디에 펼칠지 체험은 어느 곳에서 할지 전시는 어느 쪽에 할지를 의논하기로 했기에, 나는 빌린 (자작나무를 닮은 가짜) 나무를 가지고 갔다. 이 나무 이름을 '고백나무'라고 했으며, 비에 맞지 않으면서 오가는 사람들 방해하지 않도록 어디에 세울지를 의논했다.
과연, 써서 거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러나...,
어떤 일이든 생각대로 계획대로 100% 이루어지는 일은 없는 법. '고백나무'는 자연스럽게 곧바로 '소원나무'가 되었다. '고백 나무'라고 안내글을 써 붙였지만 보편의 인식과 입에 익숙한 '소원'이라는 말을 먼저 썼고, 듣는 이들도 소원 쓰기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무리 "마음 한 조각 고백나무에 내려놓고 가세요. 미안하거나 고맙거나 속상하거나 사랑하는 마음 한 조각 여기에 떨구어 놓고 가세요."라고 알려줘도 내려놓고 간 건 거의가 소원들이었다.
(소원, 소원이 이루어지길...!)
뿐만이 아니라 계산대를 맡은 시인은 체험까지는 하고 싶지 않지만 기념 또는 더워서 부채질이라도 해야겠다는 이들이 있는 데다 한가한 시간을 부채에 미리 써놓고 그려놓는 일을 도맡아 하며, 누군가 책을 사면 선물로 주는 일도 도맡아 했다.
디카시 작가 또한 자신의 책을 산 이들에게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책갈피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작가들 책을 사도 만들어 주어야 했다. 같이 온, 그러니까 친구나 가족 가운데 누구는 디카시집을, 누구는 소설을 또는 시집이나 에세이를, 그런데 디카시집을 산 사람만 만들어줄 수 없으니 덩달아 만들어 줘야 했고, 두 권 샀으니까 만들어 줘야 하는..., 만들어 줘야만 하는 까닭이 자꾸 늘어났다.
체험 부스를 맡은 이 또한 마찬 가지였다. 체험을 해보겠다고 의자에 앉는 고객 거의는 어린이들이었고, 그 눈높이에 맞춰 조곤조곤 체험 안내를 한 뒤 옆에서 또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모들을 상대로 책과 작가 소개를 덧붙이고 있었으니..., 이래저래 저마다의 까닭이 그랬고 상황이 그랬다.
어쨌든 고백 나무 아니 소원 나무는 인기가 있었다. '소원'과 '무료'라는 말이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듯했다. 특히나 아이가 그림 그리는 동안 부모는 그림 그리는 아이 사진 찍는 것만으로는 무료함을 다 날리지 못하므로 그 옆에서 소원을 썼다.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책을 사거나 또는 잠깐 쉬어가는 이들에게도 메밀꽃밭을 보면서 여행 소감이나 소원 한 가지 써서 걸어놓고 가기에는 썩 괜찮은 일이었다.
비록 고백나무로는 실패했지만, 체험을 하고 소원까지 써서 붙이던 어떤 아이가 물었다고 한다. "이거, 축제 끝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문화제에 와서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소중했던 순간이 문화제가 끝나도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던 거다.
문화제 마지막날 무이예술관 대표가 와서 알록달록 가득 채운 나뭇가지를 보더니, 소원을 써서 걸었던 종이를 무이예술관에 걸어 놓고 싶다며 달라고 한다. 쓰지 않은 종이도 덤으로 주면 예술관에서 이어가겠단다.
한아름 되는 소원지를 떼어 장보기 가방에 넣고선 '이걸 어쩌나, 기념으로 산방에 걸어 두어야 하나!' 잠깐 고민했는데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예술관에 걸게 되어 참 다행이다.
"아이야, 소중했던 순간이 그리우면 무이예술관으로 가 보렴. 네가 써서 걸었던 너의 소원이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