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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같은 기억

산골 일기

by 버폐

지금 사는 곳은 고향의 산골입니다.

비록, 고향이긴 하지만 기억 속 고향 모습이 드문드문 남아 더듬어 찾아야 겨우 만날 수 있는, 달라져도 참 많이 달라져 있는 산골 같지 않은 산골입니다.

기억에 남아있는 봉평 장거리 상점은 ‘이불 파는 집’과 ‘잡화점 가게’ ‘약국’ ‘사진관’ ‘만화방(만화방에서 파는 찐빵은 정말 맛있었지요)’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생겨난 ‘핫도그 집’ 정도인데, (그 장거리에서) 두 번 정도 (어릴 적) 만난 낯선 음식이 거리를 더 기억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첫 번째 음식은 집에서 늘 먹던 밥반찬과 학교를 오가면서 만나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들과 다르게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음식입니다. 불행(?)히도 우리 가족은 (그 옛날부터) 외식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바깥에 더 많이 나가 계셨던 아버지, 살림하던 어머니 그리고 우리 남매들이 한집에 살았는데 장거리 어느 음식점에서 함께 무언가를 먹은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요즘은 특별한 날 집에서 밥 먹는 일이 드문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가 살던 산골에서는 집안에 잔치가 있거나 손님이 오거나 일이 있으면 필요한 음식 모두를 집에서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떡이며 두부, 술을 빚는 일도 집에서 하곤 했던 거죠. 요즘처럼 한날한시 어느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거나 돈 주고 식당에서 예약하여 먹는 일도 아주아주,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하는 어느 장날, 뭣 때문인지 몰라도 어머니는 나를 장거리에 데리고 가셨어요.

장날이라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거리 골목 끝 쪽으로 나를 데려간 어머니는, 어른끼리 인사인지 안부인지 모를 무슨 말인가 나눈 뒤, 내게 "나중에 데리러 올 테니 싸우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는 겁니다.

처음 간 집이라 낯설기 짝이 없는 그 집에서 밑도 끝도 없이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으라 한 마디 툭 던져 놓고 사라지는 어머니를 쫓아가지도 못했지요. 알고 보니 먼 친척, 당숙 댁이었습니다만, 의지할 대상인 엄마는 어디론가 가버리셨고, 불안한 마음에 가뜩이나 낯선 집이라 잔뜩 쫄아있던 내가 받은 느낌은 서너 명의 아이들이 (나의) 존재를 몹시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나보다 한두 살 많은 듯한 언니 오빠들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나타난 친척 아이(나)와 사이좋게 지내려 하기는커녕 무척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기억만은 뚜렷합니다.



그네들은 어떤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서자 감추는 듯한 분위기였고, 그 집 어른은 (내게) 좀 나눠주라고 하였지요. 그러자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가지고 와서 ‘한 젓가락 먹으라’고 했던 듯한데…, 그때만 해도 처음 보는, 당최 낯선 그것은 거무죽죽한 빛깔의 국수였습니다.

한 젓가락 먹긴 했는데 맛이 낯설었습니다. 짭조름하지도 않고 맵지도 않고 구수하지도 않았지요. 그네들은 아껴가며 먹던, 내게 주기 싫어하던 그것을 나는 더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더 준다고 해도 싫다고 했을 겁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알게 된 그 음식은 짜장면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짜장면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먹고 싶거나 그리운 음식은 아니었지요. 지금도 중국음식점을 갈 일이 있으면 간짜장이나 짬뽕을 시키지 짜장면을 시키는 일은 없습니다. 까닭은 돼지고기를 넣었기 때문이지 어렸을 때의 기억과는 상관없는데, 어느 해 네팔 포카라의 어느 음식점에서 어릴 때 만났던 짜장면이 잠깐 생각났던 적이 있습니다.

포카라 거리 음식 가게 창문에 서툰 글씨의 한국어로 '짜장면'이라고 써붙여 놓은 중국음식점이 눈에 띄기에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주문을 했더니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에서 파는 짜장면과는 180도 모양도 맛도 다른 음식이 나왔거든요. 어릴 때 짜장면을 처음 만났을 때만큼이나 낯섦이 일었지요.

출처 : 인터넷


그리고 두 번째로 만난 음식은 핫도그였는데요, 그것이 장거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충격과 낯섦은 아주 컸지요. 내가 아는 빵은, 가마솥에서 김이 설설 나게 쪄내는 찐빵이고, 보름달이라는 이름의 카스텔라와 단팥빵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거칠거칠해 보이는 가루를 잔뜩 묻힌 빵 껍데기에 속은 마땅히 있어야 할 단팥은커녕 낯설기만 한, 손가락 한 마디 반 정도 크기의 분홍빛 소시지 조각이 들어있는 데다가 나무 막대기를 꽂아, 솥단지도 아니고 솥뚜껑도 아니고 둥근 냄비도 아닌 네모난 그릇에 물처럼 흥건히 부은, 펄펄 끓는 기름에 튀겨낸 것이라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양도 맛도 이름도 낯설기 이를 데 없는 핫도그라는 것에 대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낯섦을 더 증폭시킨 건 맛이었습니다. 달큰하지도 않고 구수하지도 않고 기름 맛인 데다가 폭신한 감촉이 아니라 거칠고 쫄깃한 껍데기와 함께 씹히는 맛이 (알고 보니 분홍 소시지가 내는 맛)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맛이었는데, 그 집주인이 소설책에서만 듣던 ‘결핵’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핫도그 맛이 결핵 맛일 거라 믿고(착각)는 두 번 다시 핫도그를 사 먹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산골 아이의 나름 고집이었을 겁니다.


나무 막대기를 꽂은 핫도그 또한 미국식 핫도그와는 전혀 다른 모양과 맛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요. 어쨌든 우리에게 먼저 다가온 핫도그는 나무 막대기에 거칠거칠한 작은 도깨비 방망이 같은 이상하게 생긴 빵(?)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먹지 않던 핫도그를 도심으로 이사 가서는 가끔 사 먹었습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께서 핫도그 맛을 보시고는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더라’ 시며 꿍쳐두셨던 쌈짓돈으로 가끔 사주기도 하셨지요.

봉평 장거리도 그 옛날의 거리가 아닌지가 오래됐고요.

핫도그도 지금은 분홍 소시지가 햄소시지로 바뀌었고 크기나 모양도 더 먹음직스럽게 바뀌었지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끔 만나지만 먹고 싶거나 그리운 맛은 아니라 번번히 지나치고 있답니다.


기억 속의 장거리는 희미해져 가지만 그 거리를 지나다 보면 추억이 또록또록 올라옵니다. 살아오는 동안 기억 속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아주 자잘하고 별 쓸모없는 것들이 툭 툭 튀어나올 때면 피식, 남들은 모를 웃음이 새어 나오는데요. 마치 고향이 주는 선물 같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어릴 때 보았던 곳 걸었던 곳들을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지 못한 선물을 만날 것만 같아 설레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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