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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개

폭풍의 질주

by 애프릭

<폭풍의 질주> 속편을 제작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주인공은 톰 크루즈 그대로이며 <탑건 매버릭>의 성공으로 불씨가 다시 살아난 듯합니다. 오리지널 <폭풍의 질주>는 1987년 <탑건>으로 정상에 오른 톰 크루즈가 <레인 맨>, <7월 4일생>, <칵테일>을 연달아 흥행시키고 1990년에 니콜 키드먼과 찍은 영화입니다. 톰 크루즈는 <탑건> 시절부터 그녀를 눈여겨보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직접 캐스팅하더니 영화 개봉일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해외에서 카 레이싱의 인기는 높습니다. 스포츠 선수의 연봉에서도 순위를 다투며 2004년을 예로 들면 1등이 미하엘 슈마허, 2등이 데이비드 베컴, 3등이 타어가 우즈였습니다.


그럼에도 자동차 경주를 다룬 영화가 많지 않은 것은 감동을 연출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영화에서 감동은 승리의 짧은 순간보다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옵니다. 권투 영화라면 트레이너의 자전거를 따라잡고 줄넘기의 속도가 빨라지는 순간입니다. 팀 스포츠는 패배감에서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희망에서 확신으로 팀원들 사이로 번져가는 감정의 변화에 있는데 카 레이싱은 선수가 노력하는 모습도, 팀원들의 심리를 드러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자동차 경주를 다룬 작품으로 가장 오래된 기억은 1976년 TBC에서 방영한 <달려라 번개호>가 입니다. 원제는 <마하 Go Go Go>로 <개구리 왕눈이>, <독수리 오형제>를 제작한 타츠노코 프로덕션에서 만들었고 회당 30분씩 총 52회가 방영되었습니다. 1982년에는 낡은 폭스바겐 비틀이 나오는 T.V. 시리즈 <허비 더 러브 버그>가 있었습니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으로 스타덤에 오른 린제이 로한이 2005년에 <허비 첫 시동을 걸다>로 한번 더 리메이크했습니다.


장거리, 오프로도 자동차 경주물로는 브룩 쉴즈의 <사하라>가 있습니다. 파리-다카르 랠리와 비슷한 설정으로 아버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경주에 참가하는 데일 역을 맡았습니다. 브룩쉴즈가 이 영화를 찍은 1983년은 한국 책받침사에 의미가 깊은 해입니다. 모든 책받침이 브룩 쉴즈, 소피마르소, 피비 케이츠로 나뉜 천하삼분지계의 시기였으며 이 현상은 <천녀유혼>의 왕조현과 <홀로 서기>의 싯구가 등장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등장한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출연작은 10여 편에 불과하고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블루 라군>과 <사하라> 정도입니다. 그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영화보다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 광고입니다. "나와 캘빈(청바지)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 한마디로 그녀는 청바지 업계를 평정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광고 심의-검열 당국은 심각한 후폭풍에 빠져 듭니다.


광고에 사용할 수 없는 어휘, 장면 등에 대해 나름의 체계를 갖추었다고 자부하던 검열 당국은 나(대명사), 청바지(보통 명사), 없다(형용사)만으로 외설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고 관련 법규의 보완 및 광고 중지를 위한 시행령 예고, 법적 제재에 필요한 근거 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해집니다. 당시 학계와 관계 당국은 이 문제를 놓고 사분오열 되었는데 가장 격렬했던 것은 형식론파와 의미론파의 대립입니다.


형식론파는 광고 문구에 외설스런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주관적인 해석으로 규제하는 것은 영업권의 침해가 될 수 있다고 난색을 표한데 비해 의미론파는 규제 단어의 사용에 상관없이 문맥이 성적 상상력을 유발한다면 규제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이 논란은 외설이 어디에서 비롯되느냐에 따라 대상물, 객체에 존재한다는 객관주의와 외설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주관주의의 대립으로 발전했고 소비자의 성적 상상까지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역할 한정론과 거기에 검열 기관의 존립이유가 있다는 적극적인 역할 수용론으로 나뉘었습니다.


위원들 간의 학문적인 논란은 감정의 대립으로 발전했습니다. 외설은 객체에서 비롯된다는 객관주의 관점에서 역할 한정론을 지지하던 한 위원이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말로 시작된 설전은 "외설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성적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반박을 받았고 " 당신은 성적 상상력이 그리 풍부해서 마누라한테 구박을 받느냐"는 반론이 일어나자 "내가 구박받는 거 봤냐"는 말과 함께 재떨이가 날아갔습니다.


결론이 규제 쪽으로 기울어지자 그동안 사태 추이를 관망해 온 바지 업계가 행동에 나섰습니다. 청바지가 섹시 코드로 인정된다면 매출이 줄기는커녕 늘어날 겁니다. 제일 먼저 면바지 업계가 '청바지가 섹시하다면 면바지도 섹시하다' 며 동반 등록을 요구했고 이어서 기지바지, 나팔바지, 쫄바지가 뒤를 따랐습니다. 바지 업계의 요청에 따라 규제어의 범위를 넓혀가던 위원회는 골덴바지에서 망설이다 츄리닝 업체의 신청으로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당시 츄리닝 업계가 제출한 심의 사유는 '입고 벗기가 수월해서 충분히 섹스 어필할 수 있음'이었습니다. 광고심의위원회가 규제 여부와 그 대상을 확정하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는 동안 캘빈 클라인 회사는 팔 바지 다 팔고 광고를 거둡니다. 이로써 청바지 논쟁은 막을 내리고 브룩 쉴즈는 우리 곁을 떠납니다.



<폭풍의 질주>에서 콜(톰 크루즈)은 신예 레이서로 주목을 받다 경기 중에 사고를 당합니다. 다행히 핸들을 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절친한 동료는 더 이상 운전할 수 없게 되었고 콜은 병실에서 홀로 뒤처진다는 생각에 초조해집니다. 힘들게 재기의 기회가 돌아오고 마지막 결승선을 앞두고 있는데 사고 당시와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앞차와 옆차의 간격, 뒤따라오는 차의 대형까지 사고의 순간과 동일합니다. 여기서 왼쪽으로 추월하다 사고가 났고 지금도 앞서가려면 왼쪽으로 가야 합니다. 때마침 일어난 충돌 사고로 시야는 연기에 가려졌습니다.


데자뷔. 전에 겪었던 일이 다시 반복되는 느낌은 대개 피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너무 모질어서 혹은 모질지 못해서 낭패를 봤는데 비슷한 상황이 다시 펼쳐집니다. 마주하지 않으려고 멀리 돌아왔는데 지옥의 사냥개처럼 운명의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질긴 인연인가 싶지만 세상이 그대로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대로니 되풀이되는 것이 당연할지 모릅니다. 화면 속의 주인공은 시나리오 작가가 써준 대로 해내겠지만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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