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글쓰기에 대한 책을 두세 권 읽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있고 몇 권 더 있다. 그때는 고개를 끄덖이며 읽었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은 부사를 쓰지 말라는 것 정도다. 그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몇몇 작가들이 인터뷰에서 밝힌 후일담이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허삼관>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가 원작이다. 위화는 1960년 항정우에서 태어났다. 문화 대혁명 시기에 의사인 아버지가 자본주의 당권파로 몰려 집안이 몰락했다.
먹고살기도 힘든 형편에 집에 책이 있을 리 없다. 학교에서는 루쉰과 모택동에 대해서만 배우고 돌아오는 길에는 폭로와 거짓말, 무고로 도배된 대자보를 읽었다. 혁명의 불씨가 사그라든 고등학교 때가 돼서야 외국 소설을 접했다. 대부분 시작과 끝이 뜯겨 나가고 없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발치사로 일했다. 어느 날, 창문 밖을 보니 문화원(창작물을 만드는 공산당 기구) 직원들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이직을 결심한다. 이빨을 뽑아도 가난하고 글을 써도 가난한 시기여서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1983년 <첫 번째 기숙사>로 등단해서 1993년 <살아간다는 것, To Live>이 중국에서 2천 만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장예모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인생>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허삼관 매혈기>는 1995년 작품이다. 그는 EBS와의 인터뷰에서 찢어진 소설책의 결말을 혼자 상상하던 것이 지금의 자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한 명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흥준이다.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되어 조화를 만드는 공장에서 노역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엽서를 보내는 것이 허락되었는데 그나마 교도관 앞에서 써야 했다. 엽서라는 지면은 문장을 압축하는 힘을, 지켜보는 사람은 집중력을, 그리운 가족은 감수성을 끌어올렸다. 글을 못 쓸래야 못 쓸 수가 없었다고 그 시기를 기억한다. 종종 드는 생각이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데 결핍 만한 동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