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분리수거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쳐 분리수거 시대에 접어들었다. 분리수거 초기에 사람들은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것을 기뻐하며 이 소식을 널리 전하고 서로 간에 정보를 나누었다. 이에 맞춰 분리 수거함, 분리수거 자동차, 분리수거 공장 등, 관련 산업이 발전하고 사람들은 지구 보호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찼다. 텔레비전에는 전문가가 나와 올바른 분리수거 방법을 설명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서울이 그림자에 속했다. 그는 어둠 속에 숨어 분리수거 시대의 종말을 꿈꿨다. 마치 왕당파가 사라진 절대 군주를 그리워하듯 그의 머릿속에는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어릴 적에 청소라 하면 학교 주위를 친구들과 돌며 쓰레기를 줍는 것뿐이었다. 좀 더 나이 들어서는 캔과 병만 분리하면 되었다. 그리고 첫 직장으로 가게 된 에티오피아에는 아예 쓰레기 통이 없었다. 앞에서 사람이 걸어오는데 쓰레기를 버리는 자유를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없으면 말을 하지 마시라.
그리고 옮겨간 독일에서는 잔뜩 긴장했다. 동양에서 온 무식한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 공중도덕을 어떻게 지키는지 꼼꼼히 살폈다. 교과서 1장에 환경 보호를, 2장에 히틀러 시대에 대한 반성을 하는 나라답게 분리수거를 철저히 지켰다. 단 예외가 있는데 담배꽁초다. 쓰레기 통에 버리면 불이 난다고 생각했는지 거리에 버리는 것이 허락되었다. 앞에서 경찰이 다가오는데 담배꽁초를 버려본 적이 있는가. 없으면 말을 하지 마시라. 이어서 살게 된 영국과 미국은 분리수거를 권장할 뿐 강요하지 않았다.
서울은 사진 앨범을 버리기 위해 종이, 비닐, 스프링을 따로 분리하려 애쓰는 노모를 바라보며 화가 치밀었다. 우산은 어쩔 것인가. 우산살은 재활용에, 찢어낸 천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서울은 그러지 않았다. 몰래 갖다 버렸다. 그리고 죄책감이 밀려왔다. 숨어서 우산을 버려야 하는 세상은 뭔가 잘못됐다. 서울은 알래스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거기서 북극곰을 만나면 물어볼 것이다. 삶이 좀 나아졌냐고. 얼음은 괜찮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