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 잘릴 위기에 놓였다. 직속 상사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여러 번 말을 하고 또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또'다. 이 '또'로 인해 상사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사과하지 않는 한, 마주 오는 기차처럼 충돌할 일만 남았다. 광주는 회사를 떠나면 잃게 될 것을 생각했다. 먼저 술친구다. 대부분 직장 동료들로 그 수가 많아 다시 구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음은 해외 출장이다. 마일리지도 쌓고 출장 기간이 명절과 겹쳐 시댁 행사를 빠지기에 좋았는데 사라지게 됐다.
그렇다고 신념을 버릴 수는 없다. 우울한 기분으로 출근 지하철에 오르고 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다. 비다시피 한 객차에는 여인 한 명과 졸고 있는 중학생뿐이다.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던, 고양이 얘기를 차분히 들어주던 그 사람이다. 광주가 다가가 인사를 하자 그녀도 기억하고 있었다. 광주는 상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반박했는지를 말했다. 얘기를 듣는 동안 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군요"를 반복했다. 아군을 얻은 듯한 광주는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저녁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약속한 시간에 가보니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였다. 배를 탄다고 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 광주는 신이 나 떠들었다. 길 고양이 돌보는 얘기, 삼백이 얘기 그리고 조직의 부조리함과 회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한 일 등. 무뚝뚝해 보였던 선원은 얘기를 듣고 나서는 결혼을 앞둔 상사에게 삼백이를 선물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자산 가치가 삼백만 원이나 되는 것을 선물하면 마음이 풀릴지 모르고 장화 신은 고양이 얘기도 있으니 분명 좋아할 거라고 했다. 필요하면 자기 장화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온 광주는 생각에 빠졌다. 오늘 들은 얘기를 삼백이에게 전하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생사기로에서 자신을 살려주고 1년 넘게 보살펴 주었으니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동네에 퍼졌고 광주가 돌보는 12마리 길고양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삼백이는 길을 떠났다. 용인에서 잠실까지는 먼 길이었다(광주의 상사는 잠실의 고급 아파트에 산다). 석촌호수쯤에 이르렀을 때,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고 말았다. 마침 뭍에 나간 거북이를 기다리고 있던 용왕은 토끼 대신 고양이가 왔다는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겨 까닭을 물었다. 삼백이는 길고양이로 살다 오토바이에 치인 일, 광주가 삼백만 원을 들여 자기를 치료해 준 일 등, 그간의 사정을 말했다.
롯데월드의 석촌호수 사용 기한이 곧 만료돼 어수선하던 차에 훈훈한 얘기를 들은 용왕은 크게 기뻐하며 삼백이를 서둘러 뭍으로 돌려보내라고 명했다. 연꽃은 이미 8월에 다 폈고 거북이도 없어 난감해하던 신하들은 러버덕(Rubber Duck)을 불렀다 8년 만에 다시 돌아온 러버덕에 서울 시민들은 환호했고 그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에 관심이 쏠렸다. 목에는 "결혼을 축하합니다 From 광주" 란 목걸이가 있었다. 사람들은 사연의 주인공을 수소문했고 광주와 그의 상사는 신문에 실리게 된다. 그래서일까. 광주는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