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과 국가는 자기 시선의 높이만큼만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최진석이다. 노력 여하와 운에 달린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이 된다 해도 시선의 높이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서울은 자기의 시선을 돌이켜봤다. 내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생각만 30년째다. 지금이야 자기 개발서가 차고 넘치지만 몇 권 안되던 90년대 초, <나는 다만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정신과 의사가 에세이를 내기 시작하는 신호탄이었고 민주화 운동을 한다면서 독재 정권과 다를바 없이 권위주위에 물든 운동권을 향해 내뱉은 사자후였다.
군사 정권의 끄트머리 시기, 배운 사람이라면 민주화 운동을 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시절, 그는 독재 정권과 다를 바 없이 권위주위에 물든 시위 문화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한쪽에 '실천하지 않는 지성은 지성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있다면 다른 한편에 이 책이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개인주의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 회자된 후로 여러 의사들이 책을 냈다. 그중 눈에 띈 것은 정혜신의 <남자 vs 남자>다. 그녀는 당사자와 상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면에 실린 기사나 방송 인터뷰만을 보고 심리를 읽어냈다. MBTI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 것들을 찾아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두려워하는지 풀어낸 것이다. 김영삼 vs 김어준, 박종웅 vs 유시민 등, 한 사람의 한계나 가능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 책은 이슈를 일으키며 속편 <사람 vs 사람>까지 출간된다.
시선의 높이를 올릴 방안을 찾던 서울은 고전평론가로 불리는 고미숙을 만나게 된다. 연암 박지원을 사랑하고 <서유기>를 맛깔스럽게 해석한 그녀는 최근 출판한 책의 머리글에서 '여기에서와 같이 거기서도 그러하리라'라고 적었다. 불교 '인연법'에 나오는 단순한 문장일지 몰라도 서울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지금 겪고 있는 갈등을 굳이 다음 생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려면 지금 바꿔야 하는데 난감하다.
서울은 광주가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세마네 동산에 올라 그들에게 물었다. 첫 번째 고양이가 바닥에 까는 패드가 좀 더 푹신하고 부드러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고양이는 마실 물에 설탕을 넣으면 어는점이 낮아져 물이 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열두 번째 고양이는 며칠 전, 자기 영역을 침범한 너구리가 얼어 죽었는데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거 말고 시선의 높이를 올리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으나 설탕물이 몸에 좋다, 안 좋다로 다투느라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