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가장 외로운 도로라고 불리는 길이 있다. 네바다주를 가로지르는 50번 국도다. 약 660km 구간으로 달리는 차가 드물고 휴게소와 주유소도 없어 생경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1986년 LIFE 잡지에 소개된 후, 문명에서 멀어진 감성과 밤하늘의 별을 보려는 여행객들이 부러 찾는다. 서울도 죽음의 계곡(Daeth Valley)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곧게 뻗은 길을 전속력으로 내달릴 것 같지만, 바라보는 이도 없고, 추월할 차도 없으면 세상 심심하여 곧 평소 속도로 돌아오게 된다.
신혼 초에 서울은 스쿠터를 샀다. 오토바이는 그의 오랜 로망이었다. 어린시절 고등학생이던 형이 어디선가 스쿠터를 가져왔다. 서울은 그 위에 올라 입으로 부웅 부웅~ 소리를 내며 놀았다. 성인이 된 후 사면될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후배가 오토바이를 판다는 소식을 듣고 행동으로 옮겼다. 혼다 줌머 50cc. 괴짜 엔지니어가 만든 모델로 서태지가 어느 CF에 타고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갖기만 하면 산으로, 들로 다닐 줄 알았는데 트럭 옆을 지나면 겁이 났다. 이마트 심부름용으로 좋은데 광주가 음식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된 스쿠터에 관심을 보인 것은 예닐곱 살이 된 용인이다.
집에 오토바이가 있다는 것을 신기해하고 바람을 가르는 속도감을 좋아했다. 용인을 앞에 태우고 사람들 왕래가 적은 곳, 교통 흐름이 뜸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가게 된 곳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고급 빌라촌이다. 도로포장이 잘 되어 있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었다. 높은 벽 너머로 개 짖는 소리만 들렸다. 어린 눈에도 집들이 좋아 보였는지 얼마인지 물었다.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물었고 우리는 왜 못 사냐고 물었다. 서울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훌쩍 자라 앞에 태우면 시야를 가리게 될 때부터 용인은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다. 뒤에라도 타지 않겠냐고 했지만 자리 문제가 아니었다. 오토바이, 아니 서울과 함께 하는 외출에 관심이 사라졌다. 며칠 전, 퇴근길에 길을 잘못 들어 빌라촌 골목에 들어섰다. 차를 돌려 나오기는 좁아 그 길을 끝까지 달렸다. 어린 용인이 재잘거리던 곳이다. 이 집이 좋을까 저 집이 좋을까를 고민하다 서울의 설명을 듣고 눈물을 글썽였던 곳이다. 아마 이 길을 다시 거닐 기회는 없을 것이다. 성인이 된 용엔은 멀리 살다가 어쩌다 와서는 밥만 먹고 돌아갈 것이다. 혹여 단 둘이 있게 되면 돈을 빌려줄 수 없냐고 물을 확률이 더 높다. 예전 공간에 서있기 보다는 새로 기억할 장소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