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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보

by 애프릭


광주는 오늘 회사 HR 팀으로부터 함께 일해온 직원이 그만둔다는 통보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자기가 언제까지 통보를 받아야 하냐며 펑펑 울었다. 그것이 통보를 받아서 슬픈 건지, 아끼던 직원이 그만둬서 슬픈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방에서 게임을 하던 용인이 내다봤고 바둑을 두던 서울도 잠시 멈췄다. 울음을 그친 광주는 비장한 모습으로 선언했다. 더 이상 통보받지 않고 통보하는 삶을 살겠다고. 우선 밥은 일주일에 두 번,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만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각자가 먹은 그릇의 설거지는 자신이 퇴근하기 전까지 끝내야 한다고 했고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하라고 용인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캣세마네 동산에 올라 자기를 따르는 길 고양이 12 마리를 불러 통보했다.


하루 사료는 550g이다.

하루 물은 450ml이다

저녁은 8시에서 9시 까지며 늦은 고양이에게 배식은 없다.


다음 날부터 광주는 자기가 통보한 대로 시행했다. 원래부터 일주일에 밥을 두 번 얻어먹던 서울과 용인은 별 차이가 없었으나 12 마리의 고양이들은 뭔가 달라진 것을 느끼고 긴장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들고 다니는 휴대용 저울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부피를 재기 위한 플라스크는 가방 밖으로 삐죽이 솟아 나왔고 무엇보다 술을 마시고 늦게 퇴근한 날, 저녁 시간을 늘려야 하는 건지 9시에 정확히 마감해야 하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던 와중에 8번째 고양이가 사료를 35g 만 더 달라고 했다. 11번째 고양이는 물을 25ml 더 마실 수 없냐고 사정했다. 세상은 통보한 대로 굴러갔지만 왠지 스스로가 속박된 느낌이었다. 2주째가 되던 날, 광주는 서울과 용인 그리고 고양이 12마리를 다시 불러 모았다(서울과 용인이 캣세마네 동산에 오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통보했다.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왔다. 광주는 자기가 통보한 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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