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은 어릴 적부터 책을 멀리하고 만화를 가까이했다. 본의 아니게 당근 마켓에서 만화책을 구하고 넷플릭스를 함께 보면서 동참했다. 자연스레 딸의 취향 변화를 지켜보고 세계관을 예상하게 되었다.
<진격의 거인> 거인이 등장한다.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액션물로 시작해, 그 거인이 자기 동족이라는 출생의 비밀로 이어진다. 충격적인 반전이 한국 드라마와 유사하다. 2부에 들어서면 민족 정체성과 세계 질서에 어떻게 편입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일제 강점기 우리가 겪은 상황과 비슷하고 2차 세계대전에서 유태인의 모습과 흡사한 장면이 자주 나온다. 3부에 이르면 절대악인 된 엘런 예거와 그를 저지하려는 사람들의 영웅물로 다시 돌아온다.
<귀멸의 칼날>. 혈귀라고 불리는 괴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실력이 나날이 늘면서 하나씩 물리치는 전형적인 무협 소설의 구조다. 그럼에도 귀살대의 '주'라고 불리는 가장 높은 등급에는 들지 못한다. 실력이 충분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에피소드가 반복된다. 서울은 '최선'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무엇이 안되면 개인의 잘못이라는 말로 들렸다. 정신 승리는 자칫 실상을 가리고 개인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 태평양 전쟁의 가미카제가 최선을 다한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헌데 탄지로의 노력이 눈물겹다. 어떻게든 그가 해내길 기대하다 보면 23권 단행본이 금방 읽힌다.
<하이큐> 배구 만화다. 스포츠 만화로는 <슬램 덩크>가 제일인데 용인은 <하이큐>를 더 좋아했다. 보통 주인공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거칠게 성장해서 동물적인 운동 신경을 갖기 마련인데 이 만화의 주인공은 밝다. 누구보다 구김이 없고 낙천적이다. 시합 중에 감독이 외치는 말은 배구의 특성을 보여준다.
"위를 봐!" "배구는 언제나 위를 바라보는 운동이야." "바닥에 공이 닿지 않는 한, 승부는 끝나지 않아."
배구 선수 김연경이 자신의 채널에서 경기 내용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 후로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아 어떤 책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분명 <데미안>을 읽고 있지는 않을게다. 근사한 주인공을 찾았으면 좋겠다. 똑똑하면서도 게으르고,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는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