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창고방을 정리하다 오래된 램프를 발견했다. 당근 마켓에 팔기 위해 정성스레 닦고 있는데 '펑'하는 소리와 함께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났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하고 기쁜 마음에 3가지 소원을 서둘러 말하자 지니가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대답했다. 파파고를 돌려보니 대충 이런 뜻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램프의 요정이 있음. 자기는 사진의 요정으로 사진 안으로 들여보내줄 수 있음. 들어가고 싶은 사진 3장을 가져올 것.' 서울이 인화된 사진이어야 하냐고 묻자 종이 사진이든, 클라우드 사진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서울이 첫 번째로 가져온 사진은 에티오피아에서 찍은 사진이다. 교민이라고는 대사관 직원과 선교사를 더해 채 스무 명이 안 되는 나라에 서울은 어느 정부 기구 소속으로 파견되었다.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정부 지원 등, 세상이 온통 부조리로 가득해 보였다. 낮에는 울분을 토하고 밤이면 또래들과 술집으로 몰려다녔다. 사진 속의 세상은 시간이 멈춘 세상과 비슷하다. 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지만 거리의 소음과 냄새, 누군가 틀어둔 라디오 소리는 그대로다. 그는 사진 속을 30분 정도 배회했다. 온몸의 세포들이 깨어나 20대의 열정과 치기를 불러냈다.
서울이 두 번째로 가져온 사진은 영국 요크에서 찍은 사진이다. 회사에서는 동료들의 영어를 알아들으려 애쓰고 길거리에서는 면박을 당하지는 않을까 긴장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에 지쳐가던 어느 날, 한 소녀가 영국 여왕의 크리스마스 초대를 거절했다는 기사를 봤다. 샬롯 처지. 이미 토니 블레어, 빌 클린턴, 요한 바오르 2세 앞에서 노래한 신동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보내기 위해 거절했다는 것이다.
한 걸음에 사 온 CD는 서울을 연민의 바다로 밀어 넣었다. <I Vow to Three, My Country>는 엄동설한에 쫓겨난 나그네가 마음을 다잡는 듯하고 <Just Wave Hello>는 긴 겨울을 지나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환희의 송가 같았다. 주말이면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시골로 차를 몰았다. 유채꽃이 지천으로 핀 들판을 하염없이 달리다 해 질 녘에 돌아왔다.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하려고 힘쓰던 시간이었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아름다운 만큼 차가웠던 공기 속을 서울은 천천히 거닐었다.
세 번째 사진을 고르다 서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은 고를 때가 아니다. 찍어야 할 때다! 언제든 들어가고 싶은 장면을 마련해야 한다. 청각과 후각이 재생되니 널찍하고 쾌적한 곳이 좋겠다. 그리울 사람들을 죄다 모으고 야옹이와 삼백이도 불러야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울 자신이다. 찡그린 자기를 마주하지 않으려면 인상 좋은 아저씨가 되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웃는 연습을 해야겠다. 만반의 준비가 되면 사진을 찍어야겠다.
*** Neflix <블랙미러> 시리즈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