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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by 애프릭

서울은 미국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방위를 알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예를 들어 '범인이 서쪽 문으로 도망친다.' 거나 '북쪽 계단으로 진입해!' 등, 경찰이어서 동서남북을 숙지하고 있는 건지, 대다수의 미국 사람들이 그러한지 궁금했다. 지도를 보며 운전하던 시절, 서울은 혹여 반대로 가고 있는 게 아닌지 항상 불안했다. 우연히 얻어 탄 회사 동료의 차에 전자식 나침반이 달린 룸미러를 보고 다음번 차로 점찍어 두기도 했다.


그것이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지금 차들은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나침반을 보여준다. 서울은 동네 골목길을 달리며 '이쪽이 북쪽이군, 저쪽이 남쪽이었어!' 하며 별 쓸 일도 없는 방위 감각을 익혔다. 그렇게 동서남북을 따지다 보니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이 떠올랐다. 주인공 잭 스패로우에게는 보물이 하나 있는데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황금을 원하면 황금이 있는 곳을 가리키고, 사랑하는 이가 있으면 그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서울은 집에 돌아와 삼백이에게 잭 스패로우의 나침반과 같은 AI를 만들라고 했다. 삼백이는 삼일 밤낮을 쉬지 않고 일하더니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로는 불가능하고 대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앱을 만들었다고 했다. 사용법은 간단한데 대화를 하는 동안 앱을 작동시키면 상대방과의 심리적 거리가 미터로 표시되는 방식이다. 퇴근한 광주에게 저녁을 차리라고 하니 심리적 거리가 3미터에서 100미터로 멀어졌다. 술을 조금만 마시라고 하니 500미터로 멀어졌다.


기말고사 준비로 정신이 없는 용인에게 참견을 했다. 중학교 때처럼 단순 암기로는 역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고 하자 심리적 거리가 3미터에서 100미터로 멀어졌다. 어휘력이 없으니 사회 공부를 하는 건지 국어 공부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자 40,075km 멀어졌다. 지구 둘레 길이다. 옳은 말을 한다고 해서 관계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지구와 달의 거리만큼 떨어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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