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버지

by 애프릭

며칠 전 서울은 작은 아버지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뵌 후로, 뇌출혈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것이 수년 전이었으니 뜬금없는 연락이기도 하고, 서울이 얼마나 소원하게 지내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도 있다. 친척 어른들과의 관계는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그렇다. 아버지는 동생을 못마땅해했다. 제삿날에 작은 어머니 없이 혼자 오셨는데 음식을 홀로 맡아야 했던 어머니 역시 살갑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1년에 서너 번 뵙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왕래가 끊겼다.


제삿날이면 작은 아버지는 새우깡을 사 오셨다. 한 번도 용돈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것이 데면데면하게 대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했을지 모른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조카에게 주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회사 앞으로 오신다는 것을 만류하고 퇴근 후, 잠실에 있는 아파트를 찾았다. 작은 어머니와 단 둘이 고즈넉이 사셨다. 성인이 된 후로는 함께한 기억이 없어 어린 시절 얘기를 잠시 나누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 서울이 어디든 모시겠다고 했으나 고른 곳은 동네 목살집이디. 작은 아버지는 이 집이 얼마나 유명한 곳인지, 사람이 몰려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은 운이 좋다며 기뻐하셨다. 그릇을 여러 번 비우고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까지 드셨다.



작은 아버지는 아파트 입구에서 내렸다. 운동삼아 걷겠다고 하셨다. 누군가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여러 번 손을 흔드셨고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형님 산소에 같이 가자는 문자가 있었고 그 후에 부고가 왔다. 여든이 넘은 나이여서인지 장례식장은 호상 분위기다. 오랜만에 사촌들을 만나고 그네들의 자식을 봤다. 서울과 서울의 형 제주가 있는 테이블에 작은 어머니가 오셨다.


새우깡의 기억은 제주에게도 있었는지 작은 아버지의 검소함에 대해 얘기가 오갔다. 작은 어머니는 조용히 정색을 하며 교편에서 물러난 후, 콜라텍을 다녔고, 그냥 다닌 것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다녔으며, 나름 그 동네에서 유명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콜라텍에서 만난 여자 얘기까지 이어지자 누군가 서둘러 대화 주제를 바꿨다. 망자는 말을 할 수 없어 공평성에 어긋나고 장례식장 주제로는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은 작은 아버지에게 모르는 면이 있었다는 사실보다, 아침 드라마 얘기를 하듯 편안한 표정으로 조곤조곤 얘기하시는 작은 어머니에게 놀랐다. 원래 그렇게 애기하시는지, 집에서 우울증에 빠져 있기 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해와서 인지는 알 수 없다.


화장터는 서초구에 있는 추모공원으로 정해졌다. 서울이 다녀본 화장터 중, 가장 고급스럽고 깔끔했다. 무엇보다 운구차에서 내려져 마지막 배웅하는 곳까지 직선으로 백보가 채 안된다. 누군가는 그 길이 길었으면 하겠지만 그 길은 짧을수록 좋다. 추모공원 벽 한 면에 자유롭게 글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펜도 준비되어 있다. 살아줘서 고맙다는 글과 좋은 곳으로 가라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또 한 명의 어른을 보냈다. 다른 어른이 뒤따를 것이다. 서울도 가야 할 길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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