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의 서 2

by 애프릭

일병이 되자 중계소에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해안 절벽 위에 있는 곳으로 말이 좋아 중계소지 KBS 송신소 마당 한 켠을 빌려 쓰는 것이다. 식사는 산에서 내려와 해안 소초에서 먹었다. 산 초입에 있는 절에서 과일을 얻기도 했다. 군 생활인데 점호가 없다. 괴롭히는 고참도, 괴롭힐 후임도 없다. 하루 종일 다람쥐를 관찰하다 멀리 K-18 비행장에 불이 들어오면 취침했다. 어둠은 동쪽에서 온다. 수평선에서 머물다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밀려와서는 서울이 있는 곳을 지나쳐 계곡 사이로 스며들었다.


한동안 본대와 중계소 파견 근무를 반복했다. 사건이 터진 것은 여단 본부에서 일할 때다. 무장 탈영 사건이 일어났다. 속초에서 강릉으로 내려와 수도권 쪽으로 도주할 걸로 예상되었다. 비상이 걸렸고 5분 대기조가 출동했다. 작전장교의 지시를 서울이 무전으로 전했다. 발견 즉시 사살이다. 자칫 자기 입으로 사격 명령을 내리게 된다. 3명의 탈영병들은 다른 부대이긴 하지만 서울과 같은 통신병이었다. 그들이 겪었을 일들이 얼추 짐작되었다.


서울도 탈영을 생각한 적이 있다. 아니 실제로 시도했다. 어느 겨울밤, 기합을 받던 중에 도망쳤다. 당황한 고참이 소리치며 따라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인적이 드물고 담이 낮은 곳 대신 부대 정문으로 뛰었다. 위병소의 위병들은 속옷 차림으로 달려오는 병사들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만약 정문을 벗어나면 체포할 것이다. 조사가 시작되면 고참도 무사할 수 없다. 서울은 경계선 직전에서 멈췄다. 두 번 다시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



정오 경에 상황은 해제되었다. 탈영병들은 훔친 차를 버리고 강릉 시내 골목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었다. 자기 입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었다. 정훈 교육 중에 ‘전사의 서’ 가 있다. 전투에 투입되는 병사들이 쓰는 일종의 유서다. 정훈 장교는 촛불을 켜고 분위기를 잡았다. 시큰둥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다들 진지했다. 몇 명을 호명해서 편지를 읽게 했다. 좋은 학교를 다닌거나 남겨줄 재산을 자랑하는 이도 있었지만 공기는 무거웠다. 예상대로 교육이 흘러 만족해하던 장교는 막바지에 서울을 지명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지금 전투에 나갑니다. 금방 돌아올게요. 서울 올림."


병사들은 환호했고 분위기는 깨졌다. 편지의 글처럼 군생활은 탈 없이 흘러갔다. 부대를 떠날 때의 느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군사 보호 구역 안의 절경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 아쉬웠을 뿐이다. 제대하기 전 날, 호랑이가 찾아왔다. 방사한 반달곰을 관찰하는 CCTV 를 피해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둘은 같이 담배를 피웠고 장래 계획에 대해 얘기했다. 서울이 한 번 쓰다듬어도 되냐고 물었다. 호랑이가 고개를 숙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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