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의 서 1

by 애프릭

서울은 옛날 옛날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군 생활을 했다. 그렇게 기억하는 것은 야간 경계 근무를 서고 있을 때, 호랑이가 와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어흥, 담배 주면 안 잡아먹지, 어흥"


마마, 전쟁, 불법 비디오와 함께 호환이 무서웠던 서울은 담배를 내줬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는 동안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격언과 동아줄이 끊기는 바람에 낙상사한 호랑이도 기억났다. 벽에 기대 둔 소총에 손을 뻗다 생각해보니 실탄이 없다. 빈 총으로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다. 담배를 다 핀 호랑이가 다가왔다.


“어흥, 꺼진 불도 다시 봐줘, 어흥"


그러면서 커다란 앞발로 담배를 비벼 끄더니 초소 밖으로 성큼성큼 사라졌다. 그 후로도 호랑이는 가끔 찾아와 담배를 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암컷이었다. 그녀는 자기를 거쳐간 6 마리의 수컷과 홀로 키워낸 6 마리 아기 호랑이에 대해 얘기했다. 먹이 피라미드에서 위에 있을수록 생태계 균형을 위해 태어나는 새끼 수가 적다고 말해 주자 외롭게 키울 수밖에 없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이가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은 모두 금지옥엽으로 키웠다고 했다.


서울도 호랑이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외출에서 복귀할 때마다 야한 잡지와 소설을 사와야 했다. 혹여 걸린다면 군기 교육대에 가는 것은 자신이다. 호랑이는 직접 써보는 것을 권했다. 좋은 생각이다! 한때 문학 소년을 자처하지 않았던가. 글을 써서 보여주면 '호랑이 입장에서는 별로지만 사람은 좋아할지 모른다' 거나 '호랑이가 보기에도 흥미진지하다' 고 조언했다. 병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통신대를 넘어 여단 전체에 소문이 퍼졌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8군단 내에서 읽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상황을 주시하던 기무사가 내사에 나섰지만 창작의 자유에 속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계절이 바뀌고 봄이 왔다. 봄에는 통신 대회가 열린다. 각 부대의 통신병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것이다. 전화기 전선을 연결하는 속도를 보는 가설. 안테나를 세우고 음어로 교신하는 무선. 깃발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수기. 이중 수기 대회에 서울이 참가했다. 가설은 매듭을 묶는 실력과 20kg에 달하는 방철통을 끌어야 해서 힘이 필요하다. 덩치들이 모인다. 무선은 안테나 조립과 세 자리 숫자로 표기되는 음어를 숙지해야 한다. 두뇌들이 모인다. 수기는 팔이 아프다. 그래서 이등병인 서울에게 돌아갔다.


수기는 평소에도 깃발을 쓰는 전차와 포병 부대가 우승을 도맡아 왔다. 서울이 속한 여단 통신대는 대회 주최 부대이면서도 언제나 꼴찌였다. 오른손은 자음을, 왼손은 모음을 나타낸다. 오른손 90도, 왼손 90도 한 번이면 '가'가 된다. 5개 된소리와 11개 이중 모음이 헷갈리지 않게 동작은 정확하고 절도가 있어야 한다. 고참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서울은 밥 먹고 수기 연습만 했다. 두 달이 지나자 동작이 완성되고 석 달이 지나자 한 마리 불새가 춤을 추는듯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넋을 놓고 구경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삼척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연병장에 수 백명의 병사가 모였다. 첫 종목은 무전이다. 시작 신호와 함께 15미터가 넘는 안테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워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송신자들이 음어로 무전을 날렸고 수신자는 이를 해독해서 심사관에게 달려갔다. 다음은 가설이다. 세워진 말뚝에 매듭을 묶으며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의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 탄식이 터졌다. 어딘가 선이 끊어진 것이다. 역전에 역전이 이어졌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서울에게 고참이 달려왔다. 시합 문제를 빼온 것이다.



그는 대장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 너는 팔만 흔들라고 했다. 수신을 맡은 병사에게는 답을 외우라고 했다. 팔만 흔들라니! 그저 팔을 흔들려고 지금껏 노력한 것이 아니다. 전차와 포병 부대의 선수들은 강했다. 그래도 3초 이상 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정답을 봤고 고참에게 대들 수도 없다. 그렇게 서울은 시합장으로 향했다. “전방 백 미터 적 발견. 동쪽에서 서쪽으로 빠르게 이동 중. 상황실에 즉시 보고하고 5분 대기조 출동 바람"


방금 전에 본 문장이다. 오른손을 직각으로, 왼손은 밑으로 45도. 양손을 11자로 올린 후, 오른팔을 가슴에. 다시 왼손을 직각으로. 수신자는 내 신호를 보지 않겠지만 대충 흔들 순 없다. 누군가 눈치챌 수 있다. 무엇보다 할 수 있다. 내 실력으로 할 수 있다. 수십 개의 깃발이 일제히 날리고 사람들의 시선은 전차와 포병 그리고 서울에게 쏠렸다. 동작의 크기를 최소한으로 줄인 간결함의 전차 부대, 큰 원을 그리듯 부드럽게 깃발을 날리는 포병, 팔을 뻗을 때와 당길 때의 호흡을 달리해 강약의 차이로 화려함이 돋보이는 서울의 깃발을 보며 관중들은 환호했다.


3분이 안돼 경기가 끝나고 통신대가 우승했다. 포병 대장은 말이 안 된다며 막역한 사이의 통신 대장에게 10만 원을 걸고 다시 하자고 했다. 부대원들은 사색이 되었고 서울은 반색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56번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봤다. 쪽지 시험과 반 편성 고사, 모의고사를 합치면 더 많을 것이다. 그중 제일 열심히 했다. 승리를 훔치지 않아도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기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군 생활을 함께한 사람 중에 그 해 수기 대회의 결과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날의 깃발은 서울의 가슴에만 남았다.

금요일 연재
이전 08화진로 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