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by 애프릭

서울은 당근마켓에서 시계를 샀다. IWC 포르투기저 호라이즌 블루다. 2024년 신상으로 새벽 하늘이 옅은 푸른빛으로 변하는 순간의 색을 담은 모델이다. 너무 고가여서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당근 마켓에 14만 원에 올라왔다. 서둘러 구매 예약을 하고 분당 서울대학병원 앞에서 판매자를 만났다. 혹여 가치를 모르는게 아닐까 해서 여러 번 되물었다. 신경외과 과장 승진 기념으로 샀고, 리테일가를 알고 있으며, 사정이 있어 싸게 판다고 했다.


서울은 냉큼 돈을 내고 시계를 가져왔다. 혼령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 그날 밤부터다. 알고 보니 환자에게 사망 선고를 할 때마다 쳐다봤던 시계다. 며칠에 걸쳐 세어본 결과 총 52명의 혼령이 살고 있다. 하루는 24시간 1,440분이다. 귀신 한 명당 27분씩 나와 하소연을 했다. 이렇게 해서는 죽겠다 싶어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빼자고 했다. 상담 시간이 18분으로 줄었다. 밥 먹는 시간 3시간을 더 빼자고 했고 상담 시간은 15분이 되었다. 귀신들은 자기 순서를 차례대로 기다렸고 혹여 앞 귀신이 시간을 초과하면 야유를 보냈다.



먼저 공동묘지 처녀 귀신은 택시가 카카오 손님만 받아서 택시를 탈 기회가 아예 없다고 하소연했다.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귀신은 비데가 보급되면서 입지가 줄어드는 불안감을 토로했다. 학교 복도를 거꾸로 서서 통통 거리며 다녔던 귀신은 요즘 아이들은 스카이 콩콩 자체를 몰라 극적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불평했다. 자유로 귀신은 보통 정권이 바뀌면 예전 정책이 바뀌기 마련인데 속도 제한 50Km는 언제 풀리냐고 물었다. 특히 구간 단속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교통 정책이라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네들은 오래된 슬라이드 필름 혹은 홀로그램 같은 형태로 서울에게만 보인다. 회사에서는 빈 회의실에서 얘기를 들었다. 허공에 손짓 발짓을 하는 서울을 보고 새로 온 직원들이 불안해하자 오래된 직원은 원래 미친놈이라고 안심시켰다. 귀신들은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주로 자기 사연을 알아달라는 것이어서 묵묵히 들으면 된다. 간혹 대답을 원하는 귀신에게는 ChatGPT를 연결시켜 줬다. 쭉 지켜보니 이승의 취업 걱정과 비슷하다. 취업하고 나서는 자기의 중요성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직장인과 닮았다. 서울은 이승이나 저승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에 놀랐다. 하루 바삐 귀신을 없앨까 하다가도 시계가 좋아 여전히 들고 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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