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의 미소
봄낮 산책로에서 막대가 달린 흰 풍선이 굴러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바람결이 얇아서, 유치원생 정도의 보폭이었다. 풍선의 주인도, 젊은 부모의 나들이에 영문 모른 채 동참한 그 또래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꼭 기다란 막대를 놓은 이가 어린아이일 필요는 없었다. 며칠 전 여느 때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가는데, 연식이 오래된 쇠문이 철컹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일회용 마스크를 나눠 낀 노부부가 보였다. 빌딩 어딘가에 있는 병원을 오지 않았을까. 앞서 있는 할머니가 검은 철제 휠체어에 앉아 눈인사를 건넸다. 정갈한 상냥함이 눈가의 주름으로 흘렀다. 백발의 할아버지에게 몇 층을 가시냐고 물었다. 8층에 간다는 노인은 대답을 하면서도 제 오랜 동반자의 여윈 어깨를 응시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말을 하지 않아도 대화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사각의 밀실이 그랬다. 참 많은 일들이 융단처럼 그들의 하늘을 지났을 텐데. 깎이고 튕겨나가고 얼마간 생채기가 아물다가, 어떤 때는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결국엔 그마저도 지루한 일상이 되었을 텐데. 권태는 없고, 노인의 걱정 어린 눈빛이 은은한 사랑의 표식으로 남아서, 나는 한참이나 부러움에 사로잡혔다. 노부부는 8층, 난 18층에서 내렸다. 할아버지의 새하얀 머리를 닮은 동그란 풍선이 어느 노부부의 것이길 바란다. 날이 따뜻해서 오랜만에 봄옷을 꺼내 입고, 호숫가 산책을 나온 황혼의 부부. 그 다정한 모습이 보기 좋아 막대풍선을 건네는 맘씨 좋은 이웃. 할머니는 몸에 익은 눈인사를 건네고, 그렇게 선선히 산책로를 걷다가 내 사람의 흐트러진 외투를 빤히 바라보는 노신사. 걸음을 멈추고 당신 얼굴 한번 쓸고, 앞섶을 여며주다가 풍선 막대를 놓는다. 놓친 게 아니라 슬며시 놓는다. 날이 좋아서. 그런 상상을 한다. 조금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