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 장
한여름 경주인가. 아니, 부여였다. 돌아오는 길엔 부슬비가 날렸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왕릉 화장실에서 디카를 잃어버리고 질질 짜던 잔상이 스쳐서 눈을 질끔 감았다. 집에 도착하면 말쑥한 형의 불호령이 떨어질 텐데. 차창에 서린 물기를 연신 닦아내다가 또 작은 눈을 닫았다. 그 사이 새파란 관광버스는 휴게소에 닿았다. 노상 매대에는 무명 트로트 가수의 데모 테이프부터 싸구려 연장들까지, 잡동사니들이 즐비했다. 청바지 주머니를 뒤졌더니 배춧잎 한 장이 나왔다. 그래, 이걸로. 어차피 내가 살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빠르게 좌판을 물색하고, 순식간에 세 개를 집었다. 가짜 지포 라이터, 손톱깎이, 풍선껌. 그것들은 아빠, 형, 엄마를 위한 선물이었다. 그날 밤, 엄마는 순하게 웃으며, 나의 까까머리를 쓸어내렸고, 형은 아무 말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늦은 저녁밥으로는 김치찌개를 먹었다. 젊은 엄마의 나이를 좇아가는 나는 아직도 가끔 엄마가 웃은 이유를 생각한다. 그건 아마도 종이 한 장 때문이 아니었을까. 삐뚠 글씨로 수첩에 써 내려간 작은 말들. 얼굴을 보고 말하긴 쑥스럽고, 그렇다고 귀에 속삭일 수도 없는 그런 말들.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처구니 없게도 아빠에겐 라이터를 주며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한 거 같고, 형에겐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한 듯하다. 가장 값싼 선물의 임자였던 엄마에게는 ‘예쁘다’고 썼다. 엄마가 풍선껌을 씹을 때면, 하얀 앞니가 살짝 드러났다 사라지고, 볼 한쪽이 씰룩거리고, 침이 꼴깍 목으로 넘어갔다. 그 장면은 언제나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왜냐면, 온종일 일에 치여 분주한 사람이 그때만큼은 아침 드라마 사모님보다 여유로워 보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엄마를 위해 길쭉한 풍선껌을 샀다고 적었다. 때로는 사소한 것이 가슴을 뻐근하게 만들 때가 있다고. 완전하진 않지만, 엄마는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다. 까마득한 문장이 내 머릿속을 다녀갔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이만한 문장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물질, 자본, 입방아 찧는 시대라도 그것이 차마 넘보지 못하는 차원이 있다. 살다 보면 그 진심의 정원을 함께 굽어보고 싶은 사람이 생기고, 그럴 때마다 나는 사소한 것을 꺼낸다. 그날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 편지지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