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피는 학교

아저씨의 흑백사진

by 팔레놉시스

모두가 숨죽인 순간. 바람결을 따라 흔들리는 플라타너스의 몸짓이 귓가에 걸린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백팀의 바통을 꾹 움켜쥔다. ‘땅’ 하는 총성과 함께 터져 나오는 환호성. 심장이 울려서 터질 듯 하다. 구름이 증발한 하늘에 만국기가 푸짐하게 걸렸다. 이름도 정겨운 가을 운동회날. 옷장 맨 구석에서 새하얀 운동회복을 꺼내 입고, 내친김에 새 양말까지 끼워신는다. 언덕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 백팀의 승리를 위하여. 후회 없이, 기왕이면 멋지게 달리고 싶다. 상긋 웃으며 의지를 다진다. 선생님은 그를 사진기자라고 소개했다. 묵직한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슬기로운 샘터에 등장한 중년의 남자. 스물 댓 명의 분교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다가, 외지인을 향해 하나둘 박수를 건넸다. 그날부터 아저씨는 우리 분교의 식구가 되었다. 틈만 나면 셔터를 눌렀다. 그는 우리의 모습을 담는다고 했다. 슴슴한 일상을 기록한 사진이 신문에 나오고, 잡지에도 실린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서울에 있다고 하던데. 어린 마음에 아저씨의 근태를 걱정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찍어준다니, 아이들은 카메라 렌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맘때쯤 분교 뒤편의 관사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어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다. 안건은 ‘폐교’였다. 정부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분교들을 읍내의 본교가 흡수하길 바랐다. 하나의 배움터에서 많은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였다. 분교는 학교를 넘어서, 태동하는 심장이었다. 폐교는 작은 마을의 심정지 선고와 같았다. 관사에서는 자주 고성이 오갔다. 마을 어르신들이 순서대로 낚싯대를 잡았다. 원통 안으로 플라스틱 바늘을 집어넣는 일에 성공하면, 남은 일은 우리의 몫이었다. 비좁은 원통에는 소소한 경품들이 쌓여있고, 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작지만 알찬 선물을 드려야지. 아니다, 큰 놈으로 걸어드릴까. 바깥에서 담배집 할머니, 오미자집 할아버지의 경쾌한 웃음소리라도 들리면, 세상 뿌듯함이 넘쳤다. 가을 운동회날, 젊은 부모들이 온 동네를 돌며 어르신들을 모시고 온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아이들이 주변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 건 아니었을까. 정면만 보면서 질주하지 말고, 조금 늦더라도 옆 사람을 챙기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나는 그리 짐작할 뿐이다. 그날도 희끗한 머리의 사진기자는 온종일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열 손가락이 고드름이 되도록 추운 날이었다. 서부지검 근처의 조개탕집이었던가. 뜨끈한 국물을 뜨고는, 소주잔을 부딪혔다. 아저씨와 단둘이 마주 앉은 일은 처음이었다. 그는 여전히 아이들의 소식을 궁금해했다. 족히 십 년은 전국의 작은 분교들을 돌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을 텐데. 타성에 젖지 않은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소주 한 병이 밑바닥을 드러냈을 무렵, 그는 말했다. 소위 ‘높은 사람’들이라 불리는 관료와 정치인에게 열심히 분교 이야기를 했다고. 그들 가운데는 대통령도 있었다. 그는 만국기에 걸린 이상을 올려다 보며, 흙바닥에서 발을 굴렀던 셈이다. 나는 분교에서 무사히 졸업했다. 내 동생도 그랬다. 아저씨는 사진전을 알리는 글에 오랜 소망 하나를 적었다. ‘나와 분교에서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이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제각각의 이름에 어울리는 꽃과 나무로 성장해있기를 소망한다.” 요새 어른이란 말이 부끄럽다. 어떤 날은 이루 말못할 처참한 장면들이 보도전문 채널을 메우기도 한다. 들꽃에겐 잘못이 없다. 그는 일찍이 알고 있었다. 오늘은 아저씨를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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