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같은 것
풀잎새 따다가 고이 엮던 산골분교가 있었다. 제 키 만한 족대를 어깨에 둘러메고 당차게 강가로 행진하던 어느 여름날. 초록의 물결을 첨벙첨벙 거슬러 오르던 나의 어린 날이 아닌 밤중에 아른거린다. 어떤 추억은 상류에서 뻗어나가는 물소리처럼, 우거진 숲을 뚜벅뚜벅 헤쳐 나온다. ⠀ 지난여름, 분교 사진전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났다. 지상에 한 칸, 지하에 한 칸. 작은 갤러리였다. 그는 나를 누구보다 환히 반겼다. 나는 중년의 그가 예전 모습을 한줌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도했다. 우린 근황을 묻고, 되묻고, 울상을 짓기도, 감탄 어린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았고, 답할 것도 많았다. 그건 궁금증을 해소하는 방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일 년에 한번, 아니 십 년에 한 서너 번쯤은 네 이름을 곰곰이 떠올리곤 했노라고, 넌지시 내비치는 진심이기도 했다. 한참의 대화 끝에, 그는 한 친구의 이름을 꺼냈다. 내가 잘 아는, 각별한 이름 석 자였다. ⠀ 예부터 L은 마을에서 성격 좋기로 유명했다. 타고난 듯싶었다. 그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를 알뜰히 챙기는 오랜 친구요, 그의 어머니는 너른 마음을 실천하는 선인이었다. L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비척거릴 때 서글피 울어준 고마운 분이었고, L의 어머니는 내 어린 동생을 온기로 쓰다듬어준 감사한 분이었다. 그렇다면 L은, 분교 선생님의 기억으로 대신한다. ⠀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분교장인 그는 신입생을 맞이했다. 절기상 봄이 와도, 시큰거리는 겨울 냄새는 별 수 없었다. 첫 수업시간, 여덟살 꼬마가 교실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속이 안 좋았는지, 토를 해버린 것이다. 그는 놀라지 말고, 놀리지도 말라고 아이들을 단속했다. 그리고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다. 걸레를 찾아 돌아왔을 때, 순수한 충격이 그를 휘감았다. 아홉살L이 태연하게 두 손바닥으로 한 살 어린 동생의 창피함을 치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전율했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그렇지 않고는 두터운 기억의 퇴적층에서 그 순간을 골라내기란, 유리판에 떨어진 유리조각을 찾아내는 일만큼 어려웠을 터이다. ⠀ 농담이 죽음의 공포를 처리하는 방식이라고 말한 게 커트 보니것이라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농담은 죽음이 아닌 삶의 공포에 대처하는 방식이 아닐까. 그래서 밀란 쿤데라가 농담을 찬미한 게 아닐까라는 억측도 슬쩍 끼워본다. 어쨌든 L과의 대화는 시답잖은 농담이 주를 차지한다. 그게 꽤나 도움이 됐다. 꺼질 듯한 한숨을 쉴 새 없이 배출하던 시기에도, 그와의 농담은 탄식을 막는 방편이었다. 시시껄렁한 유머와 백 번도 넘게 꺼낸 유년의 에피소드는 망쳐버린 하루를 잊는 데 큰 몫을 했다. 그 시절 L도, 그리 느꼈다면 고마운 일이다. ⠀ L은 굽이굽이, 일련의 세월을 헤쳐오다가 어제 첫 출근을 했다. L은 꽤나 오래 피아노를 치다가 그만뒀는데, 그는 그제 문화예술과로 신규 발령을 받았다. 아이러니 같기도 하고, 단막극의 클리셰 같기도 하다. 뭔들 중요하랴. 부서 막내가 되자마자 식비 통장을 뚫으러 간다는 L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잠시나마 그의 첫 외출이 산뜻했기를, 가을볕은 나무랄 데 없이 풍성했기를 바랄 뿐이었다. ⠀ 삶은 천변만화한다고, 그러니까 끝없이 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행복을 체험하면서, 행복을 인식하기 어렵듯,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자신의 삶을 인지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래도 타인의 삶은 관측하기가 수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L의 일상이 변화하는 기점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을 기다린 끝에 오늘이 왔고, 나는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친구의 출근길이 안녕하길 바란다. ⠀ 산골분교에서 부르던 가사말처럼, 노을빛 냇물 위에 예쁜 꽃모자 떠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