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계절은 모른다. 아는 건 하나. 금빛 요강을 가슴팍에 품고 흙길을 걸어내려왔다는 눈이 큰 사내아이. ⠀ 적어도 사춘기까진 큼지막한 쇠눈을 물려받고 싶었다. 스포츠머리의 소년은 눈이 크고 싶어서 저녁상에 고등어가 올라올 때마다 눈알을 독차지했다. 심지어는 눈망울이란 단어를 동경까지 했으니. 그게 뭐라고. 어린 마음은 제법 티가 나고, 어느 날 농담조로 엄마는 약속했다. 대학 가면, 그놈의 쌍꺼풀 수술부터 해주겠다고. 장난스러운 언약은 추억의 한자리를 꿰어차고야 말았다. ⠀ 큰 눈에는 기이한 장기가 있다. 한여름에 내 사촌동생은 성가신 날파리가 동공에 내려앉기를 기다리다가 때맞춰 동그란 눈을 꾹 감아버렸는데, 그러면 한 생이 마감하고 징징 소리도 멎었다. 대신 사촌동생의 말간 얼굴에는 흐뭇함이 흘렀다. 다만 큰 눈의 약점은, 들통나기 쉽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울컥이고 있구나, 울화통이 터지는구나. 아프구나. 너무도 명징한 표식이어서, 보는 사람은 글자 그대로 어쩔 줄 모르겠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 ⠀ 속이 깊은 친구가 술자리에서 불콰한 얼굴을 하고 터뜨린 말을 기억한다. 요점은, ‘이해할 수 없다.’ 가진 것을 다 주고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부모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모서리가 뭉툭한 기억들이 가감 없이 스쳐갔다. 괜찮아. 아빠는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석진, 괜찮아.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데, 그는 괜찮다고 했다. 시간의 길이와 인내의 굵기는 날마다 달랐지만, 결국 멀쩡해지는 건 맞았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 이태 전 소설가 김애란은 대학교 축제를 찾았다. 비탈을 오르는 게 힘들었다고 입을 떼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끄러웠다고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언젠가부터 꼭대기에 서서 부모를 내려보게 됐다고. 그래봤자 대학을 나오고, 책을 섭렵하고, 문학상을 몇 개 탄 게 전부인데 부모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보게 됐다고. 나도 그 부끄러움에서 예외일 순 없었다. ⠀ ‘괜찮아’ 다음은 ‘미안하다’였다. 사과의 전제는 잘못인데, 명제가 어그러질 때가 많았다. 장본인은 아빠였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지 못했다고 미안, 해줄 수 없는 것을 해주지 못했다고 미안. 이해할 순 없었지만, 위안이 됐다. 형식은 없는데 내용은 꽉 찬 위로였다. 미안하다는 말이 꼭 잘못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도 쇠눈 같은 그의 눈은 애석했다. 나의 대답은 그에게서 배운 말이었다. “괜찮아요.” ⠀ 하루에도 수어번씩 전화벨이 울린다. 오가는 말의 절반은 농담이다.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던 그에게서 가끔은 여유가 느껴진다. 오늘 저녁에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알고 보니, 당신보다 한 살이 더 많았다는 친구는, 얼마간 삶의 여정을 쏟아내고는 통화를 마칠 무렵, 덕분에 학창시절 기억이 따뜻하다고 멋쩍게 고백했단다. 나의 대답은, “잘 살았네요, 아빠.” ⠀ 아마 그때도 내 아버지는 어리숙한 동창에게 ‘괜찮아’라고 속삭였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큰 눈을 갖고 싶었던 게 아니라, 줄곧 그를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