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캔 손에 들고
내 자기소개서의 첫 문장은 늘 이렇게 시작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주말에 나는 그 마을에 다녀왔다. ⠀ 젊은 부모는 유치원생도 안된 둘째를 일터에 달고 다녔다. 늦은 봄날 그늘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깨면, 멀리서 동네 어르신이 손짓을 한다. 담배집에 가자는 뜻이니, 재빨리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꼬마가 흙길을 힘차게 달려가기라도 하면, 할아버지고 할머니고 얼굴의 모든 근육을 움직여 웃는다. 주름진 손이 통통한 손을 맞잡고 조금을 걸어가, 남은 한 손으로 담배집 문을 연다. ⠀ 이씨 할아버지는 케이크에 꽂힌 초를 힘껏 불었다. 칠순을 넘긴지 수년째이니, 촛불은 하나만 켜기로 했다. 할아버지에게 빈약한 용돈 봉투를 드리고, 아침 일찍부터 소맥 한 잔을 받았다. 전날 부어라 마셔라 했던 터라, 미역국은 한 술도 뜰 수 없었지만, 그 술은 몇 잔이고 마실 수 있었다. 그건 내가 가장 아끼는 술잔이기 때문이다. ⠀ 그 봄날 담배집에서 나는 할아버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새우깡이나 사이다를 골라야 맞는데, 캔맥주를 품에 안고 떼를 썼다고 한다. 생떼를 쓰는 놈을 무슨 수로 이기나, 사줘야지. 꼴통은 홀짝홀짝 캔맥주를 마시다가 취해버렸고, 할아버지는 눈이 큰 청년에게 사과를 했단다. “자네, 미안하게 됐네.” ⠀ 엔진 소리를 내며 언덕을 오르는 감색 스쿠터를 보면 힘이 났다. 할아버지가 곧 도착하겠구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픈 나이였고, 칭찬이 귀한 시절이었다. 할아버지는 빈 잔에 맥주를 가득 채워주는 것처럼, 온정 어린 말로 소년을 품어주었다. 비단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온 동네 어르신들이 그랬다. 어떤 날은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세 집에 들렀고, 세 개의 봉투를 양손 가득 들고 비탈길을 오른 적도 있었다. 내용물은 선홍빛 자두부터 짭조롬한 무장아찌까지, 그야말로 랜덤이었다. 그래도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는 정겨움은 매한가지였다. 그건 마치 흙길을 달려가던 날에 맛봤던 봄내음 같았다. ⠀ 술이 덜 깬 상태로 1:1 비율의 소맥을 연거푸 마셨더니, 보기 좋게 취해버렸다. 흰 봉투는 못 드려도, 한 말씀은 꼭 드리려고 했는데. 혀가 꼬여서인지, 낯이 뜨거워서인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미소가 자주 그리웠다고, 그리고 나는 가끔 그득 찬 술잔에 할아버지의 얼굴을 띄워보기도 한다고. 나는 또 할 말을 못하고 글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