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에게
5월이 오면, 어느 가족의 일상은 뉴스가 된다. 이유는 간명하다. ‘가정의 달’. 얼룩진 달력 속에나 있을 법한 글자가 침묵을 깬다. 고집을 피운다. 생전의 그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따금 있는 일이다. ⠀ 붉은 악마 티셔츠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던 시절, 여름강은 깊었다. 삼촌은 밤낮으로 문간방을 넘듯 강을 찾았다. 한낮에는 기가 막힌 작살질로 꺽지와 쏘가리를 찔러댔는데, 가히 천렵의 달인이라 부를만 했다. 날만 좋으면 삼촌은 저녁을 대충 때우고 오밤 중에 연두색 야광찌를 낚싯줄에 걸어 강물에 힘껏 던졌다. 삼촌은 오토바이 뒷좌석에 우리형을 태우고 밤낚시를 다녔다. 자리는 하나뿐이었고, 세 살 많은 형은 승자의 미소를 날렸다. 이제야 말하지만, 나는 낚시보다 밤잠이 더 좋았다. ⠀ 전교 어린이 회장이 되니, 삼촌은 내게 ’사발이’ 타는 법을 가르쳤다. 사륜 오토바이를 우린 그렇게 불렀다. 래프팅 다음으로 사발이가 한창 인기 있던 때라, 어린 마음에 친구들 앞에서 우쭐했다. 삼촌이 쉬는 날엔 단둘이 사발이를 타고 산 정상까지 다녀온 적도 있었다. 그건 특권이었다. 한동안은 나한테 소질이 있나 싶었다. 그러면 그렇지. 또래 친구들도 단번에 잘 타는 걸 보고 나는 사발이 운전을 그만뒀다. 그래도 사발이에 올라타 삼촌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쌌을 때 느꼈던 체온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 대학생이 되고 나선, 예전처럼 삼촌을 만나지 못했다. 하기야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할아버지에게 삼촌의 안부를 물으니, 그는 병원에 있다고 했다. 물기가 마를 날 없던 그의 몸이 가물어간다고 들었다. 단비의 관용은 없었다. 해갈의 기쁨도 따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거뭇한 얼굴은 수척했다. 커다란 눈동자는 처마가 부서진 빈 집 같았다. 그가 얼굴을 무너뜨리며 웃는다. 그러고는 내 별명을 부른다. “똘진아.” ⠀ 삼촌의 부고는 4년 전의 일이다. 그해 5월 초순, 그는 연식을 가늠할 수 없는 승용차에 나를 태웠다. 버스 정류장에서 언덕배기 집까지 나를 데려다주기 위해서였다. 평소 같으면 농담을 던지던 사람이 그날따라 착잡해 보였다.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그때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또 기억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대화의 주제를 완곡히 바꿔야 했다. 그래야 그를 오래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 이제 삼촌은 그토록 궁금해하던 조카들의 일상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래도 구태여 이야기한다면, 당신의 밤낚시에 동행하던 아이는 결혼해서 잘 살아요. 당신이 꾸벅꾸벅 졸면서 파리를 쫓아낸 덕분에 곤한 잠을 청할 수 있었던 아이는 벌써 밥벌이를 합니다. 제법 어른 티가 나요. 제 기억이 맞다면, 빨간 벽돌집 2층 창문에서 떨어진 아이는, 가을이면 엄마가 돼요. 그때 당신이 부러질 줄 알면서도, 두 팔을 뻗어 아이를 받아낸 덕분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정 앞에서 주저앉아 울던 아이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종헌이 삼촌, 걱정 마세요. ⠀ 세상에 가족을 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