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붕당의 폐를 기억하자
수년 전 작고한 보수 정치인 이XX씨. 이분은 능력이 뛰어나 여당 당대표도 여러 번 했고, 국회부의장도 했다. 이분이 국회부의장 시절 어떤 법안을 놓고 여당과 야당이 대립했는데 다수 여당이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킬까 봐 야당 국회의원 두 명이 이분 집에 쳐들어가 숙식을 같이하면서 이분이 밖으로 나가는 걸 막았다. 문제법안에 대한 여야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이분은 동료 국회의원에 의해 감금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힘들어진 건 사모님이었다. 불청객이지만 손님은 손님이고, 더구나 남편 동료들이다. 삼시 세끼 식사에 간식에 이부자리까지 세탁해서 제공해야 했다. 거기다 매일 보좌관이다, 신문기자다 해서 십여 명 이상이 사람들이 집에 몰려와 진을 쳤다. 사모님이 과로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이 말을 들은 야당 국회의원 사모님들이 나섰다. 모두 이XX씨 집으로 가서 사모님을 쉬게 하고 자기들이 식사 준비, 청소, 세탁 등 살림을 거들었다. 그러면서 사모님들 사이에 우정이 싹트고 이 우정은 남편들도 가깝게 만들었다. 이 사건 후에는 다들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소속 정당이 여다, 야다 다른 것이지 다들 점잖고 좋은 사람들이다. 서로 죽일 듯이 싸워도 사석에서는 누구보다 친한 동료요 이웃들이었다. 자기 생각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도 없듯이 타인의 생각이 반드시 틀리다.고도 할 수 없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상생하는게 성숙한 사회다.
반면교사로 들만한 것이 국회의원과 장관을 역임한 OOO씨다 이 사람은 상대 당의 박멸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걸 바치겠다고 공언하고 다녔다. 과연 상대를 박멸시킨다면 자기에게 돌아올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옥사(獄事)가 되풀이되면서 수백 명의 선비들이 떼죽음 당했던 조선 후기 붕당의 비극을 되풀이하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