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슈트라우스

여러 방향으로 달리기

by 죠니야


'신년 음악회'에 자주 등장하는 레파토리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있다. 이 곡은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 한 번 들으면 계속 듣게된다. "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 들은 사람을 없다. " 란 말이 맞아 떨어지는 곡이다.

이 곡의 작곡자는 요한 슈트라우스다. 우리가 아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비엔나 숲속의 이야기>를 작곡한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가 아니라 그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다 즉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이다.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워낙 출중해서 아버지의 재능과 업적이 묻힌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를 능가하는 아들인 셈이다.

아버지가 자기보다 월등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 아들을 봤을 때 너무나 기뻐 아들이 재능을 마음껏 펼치도록 밀어주고 배려해 줄 것으로 보통은 생각한다. 그러나 슈트라우스 1세는 오히려 슈트라우스 2세가 음악을 못하도록 체벌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의 방해와 억압을 극복하고 '왈츠의 왕'이 됬다.

아버지가 아들의 재능을 시기 질투해 못하게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음악가의 길이 너무나힘들고 어려워 다른 쉬운 길로 갔으면 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눈 앞의 현실만 보고 아들의 재능을 꺾어버렸다면, 즉 아들이 음악을 못했다면 아들의 인생은 행복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주옥같은 음악을 못 들었을 것이다.

3월 신학기가 시작하기 전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의 예화를 보며 학생들의 재능을 다채롭게 키우는 교육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다. " 모든 학생이 한방향으로 달리면 1등은 하나지만 10방향으로 달리면 10명의 1등이 나온다. "

또 하나의 요한 슈트라우스 에피소드다. 필자가 국민학교 다닐 때니까, 50년도 훨씬 지난 거의 60년 전 일이다. 당시 우리 담임 선생은 예체능 즉 음악 미술 체육과는 담을 쌓은 분이었다. 음악이나 미술은 노래를 잘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같은 기능이 필요한 과목이다 그런데 그 분은 그런 기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체육도 사고가 날까봐 아예 운동장조차 내보내지 않았다. 분명히 시간표에 음악 미술 체육 시간이 있지만 한 달에 한시간도 수업을 안했다. 그러다 시험이 다가오면 시험 전에 집중적으로 2-3시간 몰아 수업을 했다. 미술이나 체육은 관두고 음악 수업만 이야기하면, 첫 시간에 시험에 나오는 노래들의 계명과 박자를 교과서에 " 도도 솔솔 라라솔~ " " 팔팔 사사 육륙사~ " 쓰고 다음 시간까지 무조건 외는 것이었이다. 다음 시간이 되면 외웠는지 못외웠는지 점검해 체벌했다. 악전(음악 지식)도 마찬가지다. 도돌이표, 장단조, 화음 같은 걸 한 번 가르쳐주고 역시 다음 시간에 점검해 체벌했다. 가장 압권은 음악 감상이었다. 학교에 녹음기는 없었고 방송실에 전축(축음기)한대와 LP레코드 판이 몆 개 있었는데 본인이 방송실에 가 교과서에 나오는 음악을 듣고 와 학생들에게 " 랄랄라 ~ 랄랄라~ " 이런 식으로 멜로디 한 번 불러주고 제목을 알려준다. 다음 시간에 다시 한번 부르고 무슨 노래냐 물어보고 틀리면 체벌하는 것이었다. 음정 박자는 모르겠고 목소리 자체가 무쇠 솥 깨지는 소리다. 거의 소음에 가깝다. 다음 시간이 되면 다시 그 소리를 듣고 무슨 노래인줄 모르면 맞았다.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통했다. 당시 우리 반 음악 점수는 항상 1등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 때 담임이 듣고와서 엉터리로 흥얼거렸던 멜로디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비엔나 숲속 이야기>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다.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다운 선율이 나와 친구들에게는 " 오늘 우리가 맞을 것이냐! , 안 맞을 것이냐! "하는 기로에서 두려움에 떨게하던 악몽같은 것이었다. 체벌이 유일한 교육 방법이던 시절의 음울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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