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만 되면 생각나는 외팔이 거지
아침나절 읍내 버스에 어김없이 장짐을 올려주곤 했다
차안으로 하루 같이 그가 올려준 짐들은
보따리, 보따리 어떤 세월들 이었나
저자에 내다 팔 채소와 곡식 등속의 낡은 보퉁이들을
외팔로 거뿐거뿐 들어 올리는
그의 또 다른 팔 없는 빈 소매는 헐렁한 6.25였다
그 시절 앞이 안 보이던 것은 뒤에 선 절량 탓일까
버스가 출발하면
뒤에 남은 그의 숱 듬성한 뒷머리가 희끗거렸다
그 사내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깨빡치듯 생활 밑바닥을 통째 뒤집어엎었는지
아니면 생활이 앞니 빠지듯 불쑥 뽑혀 나갔는지
늙은 아낙과 대처로 간 자식들 올려놓기를
그만 이제 내려놓았는지
아침녘 버스가 그냥 지나친 휑한 정류장엔
차에 올리지 못한
보따리처럼 그가 없는 세상이 멍하니 버려져있다
읍내 쪽 그동안 그는 거기 가 올려놓았나
극지방 유빙들처럼 드문드문 깨진 구름장들 틈새에
웬 장짐들로
푸른 하늘이 무진장 얹혀있다
홍신선 ‘ 합덕장 길에서 ’
옛날 우리 동네에 후크 선장같이 갈쿠리 손을 달고 다니던 아저씨가 있었다. 퀭하면서 초점 없는 눈,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던 손, 카바이드 냄새 쩔은 몸에서 풍기는 절망의 그림자. 아침 댓바람부터 문 연 가게가 있으면 무작정 소리 지르며 들어가 돈 달라던 그 아저씨. 너무나 무서워 피해 다녔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그 무서운 아저씨. 길에 주저앉아 통곡을 한다. “ 아이고 어머니! 내가 빤치볼서 죽어야 했는데 왜 살려놨어요? 엉엉 ” 서러움 가득한 넋두리는 동네 어른들이 모아준 돈 몆 푼으로 끝났다. 빤치볼을 알게 된 건 한 10년쯤 지나서였다. 6.25 격전지 중 하나인 강원도 펀치볼 분지였다. “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 ” 고 하는데 외팔이 아저씨의 삶은 왜 그렇게 서럽고 고단했을까?
현충일 만 되면 생각나는 외팔이 후크선장 아저씨